기고

불출소료, 노동부장관님

2025-08-28 13:00:02 게재

현대제철에서 근무하던 당시 있었던 일이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안타까운 사망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이 있었다.

이에 따라 산재 위험이 높은 도금업무는 하도급이 금지되어 회사가 직영으로 전환해야 했다. 법 시행을 앞둔 2019년 12월 회사는 기존 하도급 도금업체 소속 76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했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정규직이 아닌 직고용 '무기계약직'으로의 채용이었다. 정규직 노조를 담당하던 임원들이 어떤(?) 이유를 들어 정규직으로의 채용을 반대했다. ‘죽음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법까지 개정되었지만 김용균씨의 희망은 정규직의 반대로 꺾이고 말았다. 제조업 현장에서 중대재해의 씨앗이 되곤 하는 노노갈등의 전형적인 사례다.

몇 년 전의 사례를 환기시킨 이유는 근래 김영훈 고용노동부장관의 중대재해 예방에 대한 행보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통령의 관심을 계기로 중대재해 예방에 대한 대책 논의가 활발하다. 이런 골든타임을 맞아 장관은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면서도 현장 노동자 출신의 장점을 살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장관은 대통령과 같은 방향에서, 같은 분야에서, 같은 내용으로 대기업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여간 점이 아쉽다.

중대재해 예방에 대한 불안한 행보

지금도 사고는 다양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사유로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전남 고흥의 새우 양식장에서는 감전으로, 곡성의 과수원에서는 지게차에 깔려서, 경북 성주에선 철판에 깔려서,경북 안동에서는 나무에 깔려서, 광주에서는 추락으로, 경북 구미에서도 추락으로 세상을 떠났다. 급기야 지난 19일에는 노동부장관이 과거 근무했던 코레일에서 2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20~21일에는 순천 레미콘 공장에서 3명 등 5곳에서 7명이 숨지고 요즘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나하나가 모두 안타까운 일이고 엄중한 분석과 최선의 대책 마련이 이뤄져야 하는 사례들이지만, 정책을 펼쳐야 하는 입장에서는 데이터에 입각한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통계적으로 보면 중대재해는 50인(억원) 이하 사업장에서, 수주산업인 건설업과 조선업에서 많이 일어난다. 이들 산업은 일감이 간헐적이어서 정규직 위주로 운영이 불가능하고, 납기가 있어서 공기의 압박이 항상 존재하고, 작업공간이 분산되어 체계적인 안전교육이 어렵다. 또한 현장 · 프로젝트 별로 손익을 평가받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제 앞에서 소개한 현대제철 사례를 확대해 볼 필요가 있다. 위험의 외주화가 모두 대기업의 탐욕 때문인가? 회사 입장에서 풀고 싶어도 노노갈등과 산업 구조 때문에 손대지 못하는 문제가 많다. 이렇게 꼬이고 꼬인 매듭을 원청에 대한 압박만으로 해결된다고 보는가? 일정 기간, 일정 부분은 개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지속되지 않을 것이고 이는 중대재해 통계에서 항상 증명되어왔다.

중대재해 비정규직, 하청업체 등에서 발생

불출소료(不出所料), 우려하는 바가 현실이 되었다는 뜻이다. 노동부장관은 철도 기관사로 근무했으며 정규직을 주로 대변하는 노조에서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대재해는 비정규직, 하청업체, 소규모 영세사업장 노동자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과연 장관은 그들의 관점에서 이 문제의 해법을 고민하고 있을까? 9월에 발표할 종합대책을 지켜볼 일이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