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어른거리는 나폴레옹의 그림자
서방언론들 “지칠 줄 모르는 패권추구로 몰락의 길 빠질 수도”
근대 유럽의 지성들은 앞다퉈 나폴레옹을 칭송했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말을 탄 시대정신”이라고 극찬했다. 악성 베토벤은 ‘영웅 교향곡’으로 찬미했다. 영국 철학자 토머스 칼라일은 ‘인류의 영웅’ 목록에 나폴레옹의 이름을 올렸다. 나폴레옹은 자유와 평등과 박애 등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전 유럽으로 실어 나른 선구자였다.
현대 영국의 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저서 ‘혁명의 시대’에서 “비록 권력이 나폴레옹을 다소 역겨운 인간으로 만들 긴 했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는 의심할 바 없이 매우 총명하고 재주가 많으며 지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홉스봄은 “한마디로 나폴레옹은 전통과 손을 끊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꿈속에서 스스로와 동일시 할 수 있던 인물이었다”고 썼다.
요즘 서방언론들이 나폴레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을 비교하는 글들을 심심찮게 싣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기존 질서와 충돌한 아웃사이더였고, 대중을 움직이는 카리스마를 지녔고, 자국의 입장을 이웃국가에 강제하는 공통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언론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두 사람의 영웅적인 면모가 아니다. 나폴레옹의 몰락 과정을 되짚어 보면서 트럼프의 최근 행보를 우려하는 내용들이다.
트럼프 대통령, 21세기판 황제 행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1일(현지시간) ‘나폴레옹이 트럼프에게 주는 교훈(Napoleon’s Lessons for Trump)’이라는 월터 러셀 미드 허드슨연구소 석좌연구원의 칼럼을 실었다. WSJ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미드는 “트럼프 대통령이 나폴레옹식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그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나폴레옹은 좌파인 자코뱅 반대자들과 우파인 왕당파 도전자들을 무찔렀다. 트럼프도 좌파 민주당 경쟁자들과 옛 공화당 주류 세력을 철저히 꺾어버렸다. 프랑스를 장악한 나폴레옹은 시선을 해외로 돌렸다. 나폴레옹은 눈부신 군사 전술과 변칙적인 외교로 저항하는 동맹세력을 하나하나 무너뜨렸다.
나폴레옹은 아우스터리츠와 예나 전투 이후 샤를마뉴 대제 이후 가장 강력한 유럽의 지배자가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세기판 황제다. 지난 18일 백악관에서 열린 유럽 정상들과의 다자회담 장면은 ‘트럼프 황제’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의 ‘레졸루트 데스크(Resolute Desk·결단의 책상)’에 홀로 앉아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7개국 정상들과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레졸루트 데스크’ 앞에 부채꼴 모양으로 배치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치 황제가 조공을 바치러 온 제후들을 접견하는 모양새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로 나폴레옹 못지 않은 권력을 휘두른다. 대내적으로는 치안유지 명목으로 수도 워싱턴D.C.에 주방위군을 투입하고, 자신을 비판해 온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심지어 대법원의 판결조차 무시하는 행보를 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일방적 관세폭탄으로 국제무역질서를 흔들고, 캐나다나 그린란드나 파나마 등 타국의 영토 혹은 자원을 넘보고, 파리기후협약 등 온실가스감축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외면하고 있다.
나폴레옹의 끝은 좋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지칠 줄 모른 채 유럽대륙의 패권을 추구했다. 그는 외국에 너무 가혹한 요구를 했다. 더 새롭고 더 나은 거래를 원했다. 기존 합의를 자주 깼다. 마침내 나폴레옹의 상대들은 그와의 협상을 거부했다.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서 대패를 했고, 결국 대서양 절해고도인 세인트헬레나 섬에 갇힌 채 삶을 마감해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지칠 줄 모른 채 세계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동맹국과 우방국에게 조차 가혹한 관세를 매기고 손바닥 뒤집듯 기존 합의를 엎는다. 트럼프의 끝은 어떨까? 미드는 WSJ 칼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와 관세, 무역 등에 있어서 낡은 규칙을 찢어버리고 자신의 규칙으로 대체했다”면서 “나폴레옹처럼 트럼프도 외교 정책에서의 영광이 국내 인기를 지탱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드는 “트럼프가 현명하다면, 나폴레옹 몰락의 교훈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트럼프 대통령이 맞닥트려야 하는 위협이 있다. 트럼프에게 일이 잘 풀릴 경우 반대자들은 속으로 분노하면서도 겉으로는 그의 위대함을 칭송하고, 그의 뜻에 굴복하거나 굴복하는 척할 것이다.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이 가을철 낙엽처럼 쌓일 것이다. 외국 사절들은 아첨하며 허리를 굽힐 것이다. 트럼프의 개인 별장인 마라라고에는 굽실거리는 최고경영자(CEO)들로 북적일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좌절을 겪으면, 분위기는 한순간에 바뀔 것이다.”서방언론이 싸늘하게 돌아선 지는 오래다. 나폴레옹의 말년을 들먹이며 트럼프에게 경고장을 날리는 언론들은 비교적 점잖은 축에 속한다. 트럼프를 아예 ‘도적’과 ‘마피아’에 비유하는 칼럼까지 등장했다.
“떠돌이 도적질로 미국경제 흔들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21일 ‘트럼프의 떠돌이 도적질이 미국 경제 흔든다’라는 앨런 비티(Alan Beattie)의 칼럼을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떠돌이 도적이나 어설픈 마피아 보스처럼 상대방의 보따리를 탈탈 털어먹고 있지만 이는 결국 미국경제에 해악을 끼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비티는 미국 경제학자 맨슈어 올슨(1932~98)의 이론을 동원했다. 올슨은 명저 ‘지배권력과 경제번영’에서 지배권력을 ‘정주형 도적(stationary bandit)’과 ‘떠돌이 도적(roving bandit)’으로 구분했다.
산악 통로를 장악한 정주형 도적은 예측 가능한 통행세만을 거둔다. 무역과 통행이 이어지도록 담보하는 조처다. 그러나 떠돌이 도적은 여행자들이 지닌 모든 것을 털어버린다. 앞날을 생각하지 않은 채 무역과 통행의 길을 아예 막아버리는 악행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비티는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와 세금 문제에서 마피아 보스처럼 행동하지만 아주 서툰 보스” 라면서 다음과 같이 직격했다. “트럼프가 무역 상대국과 기업들에게 세수를 뜯어내는 방식은 마피아 보스나 개발도상국의 독재자를 연상시킨다. 사실은 그것보다 더 나쁘다. 유능한 마피아 보스나 독재자는 착취를 하더라도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트럼프가 미국 재무부를 위해 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벌이는 약탈은 변덕스럽다. 스위스는 미국의 관세를 피하기 위해 투자로 보상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엔비디아와 AMD는 대 중국 반도체 수출액의 15%를 미 정부에 바쳐야 한다. 이런 조치는 사업과 무역의 기반 전체를 약화시키는 불확실성을 만든다.”
비티는 트럼프와의 거래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일 뿐 아니라 ‘믿을 수 없는 제안’이며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이라고 꼬집는다. 우리나라 역시 그런 거래에서 예외일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폴레옹 황제처럼 가혹한 요구를 하고 ‘떠돌이 도적’처럼 탈탈 털어가려고 하더라도 그와의 거래를 피할 수는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다행히 이 대통령이 ‘거래의 기술’로 ‘거래의 기술’의 원조인 트럼프 대통령을 녹이는 데 성공했다는 국내외 언론의 찬사들이 쏟아졌다. 보수언론인 조선일보마저 ‘한미동맹 시험대 첫 허들은 넘었다’라는 기사로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조선일보는 “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내 특검 수사에 대해 비난성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회담 시간도 32분 늦춰지면서 ‘돌발 상황’ 우려가 나왔으나 회담은 2시간 20여 분 동안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고 전했다. 외신들도 하나같이 높은 점수를 매겼다. 뉴욕타임스는 “올해 초 백악관에서 우크라이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지도자들에 굴욕감을 안긴 트럼프를 외국 정부들이 어떻게 대비하는지 잘 보여준 회담이었다”고 평가했다.
폴리티코는 “한국 대통령은 회담을 무사히 끝냈고, 심지어 중국 여행이나 북한 트럼프 타워에서의 골프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으며 트럼프 대통령을 매료시켰다”며 “그것 만으로도 승리로 간주된다”고 보도했다.
외신들 이재명 대통령 정상회담 높게 평가
문제는 언제 트럼프 대통령의 낯빛이 바뀔 지 모른다는 점이다. 언제라도 그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과 ‘믿을 수 없는 제안’, ‘이해할 수 없는 제안’들이 닥칠 수 있다. 그의 ‘떠돌이 도적질’에 대비한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2029년 1월 20일 정오 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