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공무원법 ‘복종의무조항’ 없앤다

2025-08-28 13:00:02 게재

12.3 비상계엄 위법 명령 계기로

인사처, 국가공무원법 개정 추진

국회도 개정안 3개 발의해 논의

1949년 국가공무원법 제정 이후 76년간 유지해 온 공무원의 ‘상관 명령 복종 의무’ 조항이 사라진다. ‘복종’은 ‘준수’로 바뀌고, 박정희 군사정부가 삭제했던 ‘이의제기’ 단서 조항도 되살아난다.

28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혁신처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안에 정부안을 확정해 국회에 제출하는 것이 목표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제57조)은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조항 때문에 위법하거나 부당한 명령일 경우에도 불이익을 우려해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말 윤석열 전 대통령이 위법하게 일으킨 12.3 비상계엄 내란 사태다.

특히 이 명령 복종 의무에는 단서조항조차 없다. 독일은 명백히 위법하거나 헌법질서에 반하는 명령은 따르지 않을 의무, 즉 거부할 의무가 규정돼 있다. 나치 시대의 ‘무조건 복종’의 폐해를 반성해 거부권과 책임 분리를 명문화했다.

프랑스 공무원법은 ‘명령이 명백히 위법하고 공공의 이익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공무원은 그 집행을 거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거부’를 권리가 아니라 ‘법적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도 불법 명령을 따랐을 때 오히려 공무원이 형사책임을 질 수 있다. 주요 선진국 중 우리처럼 복종 의무 규정에 이의제기나 거부 권한을 명문화하지 않은 나라는 일본 뿐이다.

국가공무원법에 처음부터 이의제기 조항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49년 법이 처음 제정될 당시 ‘공무원은 소속 장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뒤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 불법·부당한 명령에 대한 이의제기 기회를 부여했다.

하지만 이 조항은 1963년 박정희 군사정부가 새 국가공무원법을 제정하면서 삭제했다. 명령을 따라야 할 대상도 장관에서 상관으로 바꿨다.

인사처는 위압적인 어감을 갖고 있는 ‘복종’이라는 용어도 교체하기로 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체어는 ‘준수’나 ‘이행’ 정도다. 인사처 관계자는 “위법한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공무원의 명령 복종 의무 조항을 개정할 필요성이 커졌다”며 “위법·부당한 상관 명령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 국민의 권리를 지키도록 하는 것이 개정 목적”이라고 말했다.

국가공무원법 개정에 맞춰 행정안전부도 지방공무원법 개정을 함께 논의한다. 지방공무원법(제48조) 역시 ‘공무원은 법령을 준수하며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복종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 법 역시 이의제기 단서 조항은 없다. 사실상 국가공무원법과 쌍둥이 법인 셈이다.

이번에 인사처 계획대로 국가공무원법이 개정된다면 공교롭게도 군사반란 내란 등 정변 이후 관련 규정이 바뀌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다만 1963년에는 공무원을 통제할 목적으로, 이번에는 통제에서 벗어나게 할 목적으로 법률이 개정된다는 차이가 있다.

국회에서는 이미 관련 법안 개정 논의가 시작됐다. 용해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27일 가장 먼저 ‘복종 의무’에 단서 조항을 달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올해 1월 23일 유사한 내용의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4일 발의한 개정안에는 명령 복종 의무뿐 아니라 ‘정치적 중립 의무’에 대한 개선 내용도 담겼다. 공무원이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게 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직무 외 영역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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