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자사주 소각 의무화 필요한가

2025-08-28 13:00:04 게재

이번 달 25일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가 포함된 2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와는 별개로 주주환원 강화와 경영권 남용 방지를 위해 신규 자사주는 취득 후 일정 기간 내 소각을 의무화하고 기존 자사주도 유예기간을 부여 후 소각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과거 이재명 대통령은 핵심 대선공약으로 상장회사의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해 주주 이익으로 환원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최근 태광산업이 자사주 기반의 교환사채를 발행하려고 시도했으나 일부 사외이사들의 반대와 기존 주주들의 반발 그리고 금융감독원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교환사채 발행 절차를 중단하면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쟁이 더욱 격화되었다.

자사주를 활용한 경영권 방어는 주주가치 훼손 우려

기업은 스스로를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발행한 주식을 다시 취득하여 자사주로 보유하는 경우 의결권이나 배당권이 없다. 국제회계기준에서도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하면 자산이 아닌 자기자본에서 직접 차감하는 방식으로 회계처리 하며, 자사주를 매도하거나 소각할 때 그 차익 또는 손실은 손익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즉, 자사주 매각손익은 영업을 해서 번 돈이 아니라 주주와의 거래에서 주주가 기업에 투자한 돈을 다시 돌려준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에서는 자사주 의무 소각이 추진되자 일부 지주회사나 대형주의 주가가 20~30%씩 상승하면서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자사주가 소각되면 발행주식수가 감소해 주당순이익과 주당순자산이 상승할 뿐만 아니라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이 높아져 주가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 수단이 사라져 적대적 M&A에 취약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자사주 소각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본시장에서 지배주주가 경영권 유지를 위해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지배주주인 경영자는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우호 세력에게 자사주를 매각하거나 교환사채를 발행해 의결권을 부활시키는 방법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주주의 돈을 자신의 경영권 방어에 활용하기 때문에 주주가치 훼손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은 주별로 자사주 관련 규제가 다르다. 캘리포니아주는 자사주를 취득하는 경우 미발행 주식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소각과 유사하다. 반면 델라웨어주는 자사주 취득 후 보유할 수 있으나 자기주식으로서 권리가 인정되지 않으며 처분에 제한이 없다. 다만 특정 주주의 이익을 위해 자기주식을 처분하면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으로 민사소송을 당할 수 있다.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은 자사주를 매입하면 소각하는 관행이 정착되어 있다.

영국은 자사주 보유를 허용하고 매각도 가능하나 자사주 매각은 신주발행과 동일하게 간주하기 때문에 기존 주주가 우선적으로 매수할 권리를 갖는다. 또한 자기주식을 제3자에게 처분하려면 정관이나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활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사주 소각은 자본시장 친화적인 방식이 바람직

자사주는 주주가 출자한 돈을 다시 주주에게 환원하여 자본이 감소한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소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자사주를 이미 다량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에게 단기적으로 소각하도록 의무화하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넘길 우호세력을 찾느라 시장에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오히려 기업에게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 활용 목적과 계획을 구체적으로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이사들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에 기반하여 책임지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이사들이 개별회사의 상황을 고려하여 주주가치를 높일 수 있는 최선의 의사결정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최선의 답을 찾기 위해 공론의 장을 열고 지혜를 모으길 기대한다.

김범준 가톨릭대 교수 회계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