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미중 대결 시대, 한국 외교의 새로운 선택
국제정치는 무정부 상태 속에서 국가들이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는 장이다. 따라서 국제정치사는 전쟁과 평화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특히 강대국들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권력의 극대화를 추구하며 강력한 공격적 군사력을 갖는 상대의 의도를 확신할 수 없는 불확실성은 상호 불신과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따라서 어느 한 강대국의 힘이 급속히 증대되면 역사적으로 두가지 경로가 반복되었다. 하나는 전쟁을 통해 세력권을 확대하며 주변국을 복속시키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주변국들이 연합해 억지 혹은 전쟁으로 그 팽창을 제어하는 경우이다.
유럽의 역사는 이를 잘 보여준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 빌헬름의 제2제국과 나치의 독일 제국, 그리고 제국주의 일본의 팽창은 모두 역외 균형자인 영국과 미국의 개입과 동맹국들의 연합을 통해서만 저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살상과 문명의 파괴였다.
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 미 시카고대 교수의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은 국제정치의 구조적 논리를 예리하게 설명한다. 21세기 강대국 전쟁의 잠재적인 후보는 중국이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연평균 약 9%의 경제성장률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 2024년 기준 세계 GDP 점유율 1/5에 이르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중국의 국방비는 2024년 기준 3140억달러로 세계 국방비 지출의 12%이고 군사력 지표는 미국에 이어 2위에 해당된다.
중국의 팽창과 미국의 포위전략 사이에서
이에 따라 미중 간 경쟁은 군사안보 지형에 뚜렷한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의 ‘반접근 지역거부(A2/AD: Anti-Acess/Area-Denial)’ 전략은 미국의 항공모함과 전략자산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접근하는 것을 레이더 시설, 지대함 탄도미사일 등을 통해서 막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 미국은 공해군 중심의 공해전투(AirSea Battle)와 포괄적 미사일 방어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나 유소작위(有所作爲, 어떤 일을 해서 성취한다)의 신중한 외교에서 벗어나 중국몽(中國夢)과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내세우며 해군력 증강과 남중국해 세력권 확대에 나섰다. 중국은 항상 대만문제나 영토, 영해 영유권에 대한 강경한 무력사용 의지를 일관되게 표명하여 왔다.
중국의 팽창에 맞서 미국은 포위전략을 구사해 왔다. 오바마정부의 ‘재균형 정책’이나 트럼프정부의 ‘인도 태평양 전략’은 모두 주변국과 연합해서 중국을 억지하는 것이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 간 쿼드(QUAD)를, 그리고 미국 영국 호주 간 안보협의체인 오커스(AUKUS)를 출범시키며 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한국과 일본과는 한·미·일 삼각안보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미일 순방은 이러한 구조적 현실을 반영한다. 미국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일본과 먼저 회담한 것은 관행을 깬 실용적 선택으로 볼 수 있지만 그 배경에는 한국이 이미 ‘한·미·일’로 묶여서 강대국 정치의 구도 속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는 현실이 놓여있다.
국제정치에서 ‘연루’란 동맹국의 전략적 선택에 휘말려 원치 않는 전쟁에 끌려들어 갈 수 있는 상황을 뜻하며 역사는 그 결과가 비극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의 ‘전략적 유연성’이 의제로 채택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중국과 공존 위한 새로운 대전략 필요
그렇다면 ‘역사의 필연’으로 보이는 강대국 정치의 비극적 운명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연루의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해 ‘헤징(hedging)’ 전략이 종종 거론된다. 아세안 국가들처럼 안보는 미국과 공조하면서도 경제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중적 접근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헤징은 동맹 신뢰를 약화시킬 위험을 내포하며 무엇보다 강대국 전쟁 자체를 예방하는 해법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한국 외교가 직면한 근본적인 과제는 연루와 헤징의 불안정한 줄타기를 넘어서는 장기적인 국가 대전략의 수립에 있다.
이는 단순히 한미동맹과 한중관계를 균형 있게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안정성을 제도화하고 한국 스스로 외교적 주도권을 제고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국민주권 시대의 한국은 더 이상 현실의 구조에 끌려가는 외교에서 벗어나 미래의 구조를 능동적으로 설계하는 외교로 전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