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군방첩사령부, 해편이 아니라 해체가 답이다
적국에 알리기 위하여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하는 것을 '간첩'이라고 한다(형법 제98조 제1항). 간첩 행위를 막기 위한 일련의 활동이 '방첩'이다. 국가기밀이란 국가의 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막기 위해 비밀로 해야 할 사실·대상·지식을 의미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군에 관련된 군사기밀이다. 따라서 각국의 군 조직에는 방첩 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군사경찰이 이를 담당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별도의 조직을 두기도 한다.
한국에서 군사방첩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은 ‘국군방첩사령부’다. 국군보안사령부(1977년)→국군기무사령부(1991년)→군사안보지원사령부(2018년)→국군방첩사령부(2022년)로 명칭을 변경해 온 이 조직에는 방첩 외에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특수한 기능이 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은 자신들의 성공체험을 모방하려는 모험주의자들을 경계하는 것이 당연했고 여기서 등장한 것이 ‘대전복(對顚覆)’ 개념이다. 전복은 ‘사회 체제나 정권을 뒤집어엎는 것’으로, 대전복이란 군사 쿠데타를 저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상적 군 내부 사찰은 군 정상적 기능 침해
군사 쿠데타를 실행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직접 병력을 장악하고 있는 각급 부대의 지휘관으로 쿠데타를 막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상시적 감시·관찰이 유효한 수단이다. 이러한 활동은 군사정권은 물론 민주화 이후의 정부에서도 계속되었고, 동향 파악 또는 세평 수집이라는 명목으로 사찰은 계속되었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이와 같은 만성적인 사찰은 군 내부 구성원들의 감수성을 무디게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일상적인 사찰이 군의 정상적인 기능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방첩사령부는 방첩과 수사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무정형·무제한적인 동향 파악은 수사기관의 속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범죄의 수사는 구체적 사실에 근거를 둔 범죄의 혐의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제가 없이 단지 고위직 군인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기관이 당사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은 수사기관의 임무가 아닐 뿐 아니라, 실질적 법치주의의 원칙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2018년 문재인정부에서는 기무사령부를 해편(解編)한다며 명칭을 변경하고 일부 인원을 감축했다. 그러나 오랜 역사적 적폐는 거의 해결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령관을 대장으로 진급시키지 않는다는 20년간의 인사 원칙까지 무시하는 개악까지 벌어졌다. 그 후 윤석열정부에서 방첩사령부로 명칭을 변경한 이 조직은 어떤 민간인이 출간한 일기의 한 구절이 '군사기밀보호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주변인들을 상대로 저인망식 수사를 벌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또한 쿠데타 방지가 임무인 조직이 오히려 친위 쿠데타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그 존재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하는 것이었다.
‘대전복’ 임무, 시대적 의미 상실한 개념
12·3 사태는 우리 헌정사에 또 다른 오점으로 남았지만, 우리 국민의 헌법에의 의지가 더 이상의 군사 쿠데타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 사건이었다. 쿠데타 방지라는 명목으로 군 내부를 자의적으로 통제해온 ‘대전복’이라는 임무는 이제 시대적 의미를 상실한 개념에 불과하다. 이제 방첩사령부에 필요한 것은 해편(Scrap & Built)이 아니라 해체(Scrap)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