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내놓는 종합대책에도 또 증가한 피싱범죄

2025-09-01 13:00:20 게재

연말까지 피해액 1조원 돌파할 듯, 역대 최대 … 경찰, 내년 1월까지 대대적 단속 계획

수 년째 범정부 차원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보이스피싱·스미싱 등 이른바 피싱 범죄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수사기관의 대책을 피해 한발 앞서 진화하는 신종 수법으로 단속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1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발생한 피싱 범죄는 1만4707건, 피해액은 7766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발생 건수는 25.3%, 피해액은 두 배(98.7%) 가까이 증가했다.

이중 금융감독원이나 검사 등을 사칭하는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이 전체 피해액의 75%(5867억원)를 차지했다. 건당 평균 피해액도 7554만원으로 피해가 고액화되는 추세다.

현재와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피해액이 올해 처음으로 1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범죄수법 진화, 첨단기술까지 동원 = 보이스피싱은 단순히 검사나 금융감독원, 경찰 등을 사칭해 돈을 요구하던 과거와 달리 치밀하게 짜인 각본과 악성앱 등 첨단기술이 결합한 범죄로 진화했다.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연령대별로 보면, 30대 이하 청년층이 전체 피해자의 절반 이상(52%)을 차지했다. 온라인 금융 환경에 익숙한 계층마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전적인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 범죄는 투자리딩방(3939건·3438억원 피해), 로맨스스캠(1163건·705억원 피해), 노쇼사기(2892건·414억원 피해) 등 신종 수법들로 분화되고 있다. 이들 유사 피싱 범죄까지 합하면 올해 피해액은 이미 1조2000억원대에 달한다.

특히 최근에는 피해자를 속여 스스로 모텔에 감금하도록 하는 ‘셀프감금형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대전동부경찰서는 “여자 친구가 수사관이라는 사람과 통화하더니 어제부터 모텔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있다”는 다급한 신고를 받았다. 조사 결과, 피해자 A씨는 전날부터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를 사칭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범죄자로부터 가짜 수사서류를 받고서 겁에 질려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범인은 A씨를 장시간 추궁하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에 가서 대기하라.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바로 구속하겠다”고 겁박했다. 겁에 질린 A씨는 혼자서 모텔을 찾아 20여 시간가량 머물면서 보이스피싱 범죄자들과 통화를 이어갔다. A씨는 그들의 지시에 따라 스마트폰 공기계를 구입했고 원격제어 앱까지 다운받아 실행했다.

A씨는 신고받고 출동했던 경찰을 의심할 만큼 보이스피싱범들의 말을 믿었다. 경찰은 A씨가 범인들로부터 받은 수사서류가 가짜 서류라는 걸 확인시킨 뒤에도 상당시간 설명과 설득 끝에야 금전적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이 당장 돈을 요구하다 의심받을 것을 피하기 위해 장시간에 걸쳐 겁박과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으로 피해자를 고립시켜 상식적 사고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새로운 수법이 등장한 것이다.

◆개인정보 유출도 범죄 증가 원인 = 또한 문자메시지와 피싱이 결합한 사기행위였던 스미싱은 최근 전화 유도형, 검색 노출 유도형 등으로 분화되고 있다.

전화 유도형은 정부기관을 사칭하는 전화로 인터넷 주소(URL)를 불러준 뒤 2단계에 걸쳐 악성앱을 설치하게 하고 민감한 정보를 탈취한다. 검색 노출 유도형은 제로페이, 금융위원회, 행정안전부 등 정부기관 사칭 페이지로 연결을 유도한 뒤 전화나 메시지로 피해자에게 접근, 카드번호와 같은 개인정보를 입력하게 하는 방식이다. 사칭범은 해외 서버를 이용하거나 대포폰을 활용, 대량문자 발송서비스로 스미싱 문자를 유포한다.

‘악성앱’이 모든 피싱 범죄 시나리오를 가능하게 한다. 설치하면 범죄자가 피해자의 통화 가로채기는 물론 휴대전화 내 정보 탈취, 백신앱 삭제, 카메라·위치정보·마이크 기능 등을 탈취해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한다.

이와 함께 반복되는 개인정보 유출도 피싱 범죄가 증가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최근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이 사용하는 악성앱 제어서버를 직접 확인한 결과 이들은 정교하게 구성된 관리자 페이지를 이용해 피해자 이름과 전화번호, 휴대전화 기종, 통신사와 같은 기본정보는 물론 통화내용 녹음, 원격제어 및 피해자의 실시간 위치정보까지도 확보하고 있었다.

이들은 또 금융감독원·검찰·경찰 등 각 기관에서 실제로 사용 중인 전화번호 약 80여개를 목록화했다. 피해자가 그중 어떤 번호로 발신하더라도 범죄조직이 사용하는 하나의 번호로 연결되도록 하거나, 범죄조직이 발신한 전화가 피해자 휴대전화에는 기관 대표번호로 표시되게 조작하는 (이른바 강수강발) 기능 역시 악성앱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범죄 수익 수거방법도 진화 = 대포통장을 이용하는 수법에 대한 경찰의 단속이 강화되자 이를 피하기 위해 가상자산을 활용하는 신종 수법도 등장했다.

20대 남성 B씨는 지난 4월 서울중앙지검 검사 사칭범으로부터 ‘본인 명의 대포통장이 적발돼 자산 검수를 해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사칭범은 1억9000만원 상당의 테더코인(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구매하도록 유도한 뒤 자신이 알려주는 지갑 주소로 전달하라고 했다.

60대 여성 C씨도 지난해 10월 카드 배송원 사칭범에게 연락받았다. 카드사 고객센터, 금융감독원, 검사가 순차적으로 연결되더니 역시 ‘본인 명의 대포통장이 적발돼 자산 검수를 해야 한다’며 1억9000만원의 비트코인을 사게 했다.

두 사람이 사칭범이 알려주는 지갑 주소로 전송한 가상자산은 결국 사라졌다.

◆포상금 최대 5억원 내건 경찰 = 상황이 심각해지자 경찰이 9월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5개월간 피싱 범죄에 대한 대대적 특별단속에 착수한다. 경찰청은 “5개월간 경찰 수사역량을 집중하겠다”며 “국내외 피싱 범죄 조직과 더불어 자금세탁, 대포폰, 대포통장 등까지 엄정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단속은 지난 28일 발표된 범정부 피싱 근절 종합대책의 일환이다. 경찰은 전국 수사 부서에 400여명 규모의 전담 수사 인력을 증원하고, 서울·부산·광주·경기남부·충남경찰청에는 피싱 범죄 전담수사대·팀을 신설한다.

박성주 국수본부장은 “최근 피싱 범죄는 교묘한 신종 수법을 사용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하고 피해자들이 다시 딛고 일어설 힘과 의지까지 뺏어가는 조직적·악성 범죄”라며 “피싱 범죄로 국민의 재산과 안전까지 위협받고 있는 만큼 범죄 근절을 위해 경찰의 모든 수사역량을 집중해 강력하게 단속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올해 7월 신고보상금을 최대 5억원까지 대폭 상향했다”며 “국민 여러분의 용기 있는 신고와 제보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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