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후위기 시대, 치수 없는 통합물관리는 모래성

2025-09-02 13:00:01 게재

지난 7월 충청 호남 경남 등 남부 지방에 “수백년에 한 번 올 극한 호우”가 발생해 18명이 숨지고 9명이 실종되었으며, 1만4166명이 대피하는 대재앙이 벌어졌다. 정부가 호우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하고, 경남 산청군에는 국가소방동원령까지 발령할 정도였다.

농업은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 농경지는 한번 침수되면 배수가 쉽지 않고, 작물은 몇 시간만 물에 잠겨도 뿌리가 썩기 시작한다. 토양 속 산소 공급이 끊어져 땅이 망가지면 그해 농사는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 농민들에게 이는 단순한 경제적 손실이 아니라 1년간의 정성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절망이자 가족 생계와 직결되는 생존 문제다.

현행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을 보면 전체 154개 이행과제 중 치수 분야는 36개(23.4%)에 불과하다. 이수 분야 48개(31.2%), 환경 분야 43개(27.9%)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순위다. 기후위기로 극한 호우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치수 대응이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려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후순위로 밀린 치수대응 '심각한 상황'

전체 수자원 이용량의 63%를 차지하는 농업용수는 평상시 안정적 농업생산을 뒷받침하고, 재해 시 국토를 지키는 최전방 방어선이다. 저수지는 홍수 때 하천 범람을 막는 천연 댐이고, 배수장은 농경지 침수를 방지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시설들이 상호 연계 없이 운영되어 효과가 반감된다는 점이다. 배수장은 하천 수위가 낮을 때만 제 기능을 하는데 하천 정비가 늦어지면 배수 효과가 반감된다.

수생태계 보전을 이유로 하천 준설이나 개선 작업이 지연되면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뒤로 밀리고 있다. 환경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식량 생산 기반을 지키는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치수는 환경부,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행정안전부 등 여러 부처가 관여해 관리 체계가 분산되고 각자 제 갈 길만 간다. 각 부처가 따로 예산을 세우고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중복 투자는 물론 정작 필요한 곳은 사각지대에 놓인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물관리위원회가 설치되었으나 현실은 기대에 못 미친다.

국가물관리위원회 민간위원 21명 중 농업계는 2명(9.5%), 유역물관리위원회 민간위원 87명 중 농업계는 10명(11.5%)에 불과하다. 전체 용수의 63%를 사용하는 농업 분야 의견이 정책 수립에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국가물관리위원회는 부처별·유역별 물관리 계획을 통합·조정하고 현장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농업인과 전문가 참여 확대가 필수적이다. 부처 간 정보 공유와 협업 체계를 제도적으로 확립해 계획수립부터 실행까지 일관된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앞으로 극한 기상은 더욱 빈번하고 강해질 것이다. 산림에서 시작해 하천과 농경지를 거쳐 도시로 이어지는 물의 흐름을 유역 단위로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이 절실하다. 치산치수를 아우르는 진정한 통합물관리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치수강화는 선택 아닌 생존 문제

농민들은 매년 반복되는 자연재해 앞에서 너무 오랫동안 속수무책이었다. 국가가 나서서 재해에 강한 농업 인프라를 구축하고 안전한 식량 생산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치수강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 문제다.

조희성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