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논란 ‘삼성생명 회계처리’ ② 배당 못받는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들
보험계약자 돈으로 삼성전자 주식 사고, 이익 환원은 외면
유배당 상품 계약자 몫 9조 … 배당 안하고 시간 지날수록 계약자 줄어 회사 이익
영구 일탈회계 등 회계 논란 촉발된 출발점 … 보험계약자들 다시 소송 제기 검토
삼성생명의 회계처리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삼성생명은 국제회계기준에서 극히 예외적인 사례로 인정되는 일탈회계를 사실상 영구 적용 중이다. 일탈회계 적용에 따른 회계 논란이 촉발된 출발점은 과거 판매한 유배당상품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보험계약자에게 받은 돈으로 막대한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한 것에서 기인한다.
삼성생명이 공시한 올해 상반기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회사가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은 6월말 기준 8조9358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 지분 평가이익에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 몫의 비율을 곱한 금액이다. 2023년 시행된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의 몫을 배당하겠다는 금액에 기초해서 보험부채로 재무제표에 표시해야 하지만, 삼성생명은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항목을 두는 방식의 일탈회계를 적용하고 있다.
삼성생명이 올해 초 삼성전자 주식 일부를 매각하면서 절대 팔지 않겠다는 전제조건으로 인정받은 일탈회계 요건이 깨지면서 회계 논란이 커졌다.
경제민주주의21과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삼성생명에 대한 회계처리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어 금감원에 질의서와 감리요청서 등을 보냈다. 또 여권 국회의원들이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 삼성생명에 대한 특혜성 조치를 바로 잡는 시도를 하고 있다. 삼성생명의 회계처리 문제는 삼성생명만의 문제가 아닌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문제라는 점에서 보험업계는 물론 금융업계, 재계까지 초유의 관심이다.
◆5천억원에 사들인 삼성전자 주식 30조원 넘겨 = 삼성생명의 회계 논란을 이해하려면 삼성생명이 수십년 전 판매했던 유배당상품부터 살펴봐야 한다. 삼성생명의 전신은 1957년 설립된 동방생명보험이다. 동방생명은 1963년 삼성그룹에 편입됐고, 1989년 사명을 삼성생명으로 변경했다.
삼성생명은 삼성의 핵심계열사이자 금융계열사들의 맏형이다. 1969년 삼성전자가 설립되자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5억800만주를 5442억원에 사들였다. 당시 한국 정부 한해 예산은 3243억원으로 정부 예산을 초과하는 규모다. 현재 삼성전자 시가를 반영할 경우 30조원이 넘는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할 당시 재원 중에는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들이 지불한 보험료가 있다. 삼성생명은 당시 유배당상품만 판매했는데, 현재 보험사들이 주로 판매하는 무배당상품과 차이가 있다.
유배당상품은 계약자들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가지고 보험사가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 자산운용을 한 뒤 초과수익이 남을 경우 계약자들에게 환원(배당)하는 상품을 말한다.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는 피보험자의 사망이나 장애 등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약속된 보험금을 받는데, 이외에 자산운용을 통한 이익을 별도로 배당받는다. 이 때문에 통상 무배당상품에 비해 보험료가 높다.
구체적인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2022년을 기준으로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 규모는 138만명으로 추정된다. 삼성생명은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들이 낸 보험료 일부로 삼성전자 주식을 취득했다. 주가가 올라가면 삼성생명의 이익도 늘고, 그에 따른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들에게 배당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배당은 이뤄지지 않았고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가 사망할 경우 사망보험금만 지급된다. 계약자들이 사망하면 배당할 이익은 모두 삼성생명에 귀속된다.
삼성생명은 1957년 4월 설립해 1992년 10월까지 유배당보험상품만 판매했다. 이후에는 유배당상품보다 더 싼 무배당상품을 판매했다.
삼성생명은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배당금을 ‘계약자지분조정’으로 회계처리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에 따라 평가이익이 연동된다. 2020년 12월 기준 15조1461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12월에는 7조2983억원으로 줄었지만 올 6월말에는 8조9358억원으로 다시 증가했다.
◆사정 변경에 따른 법적 논란 피하기 어려워 = 1999년 삼성생명이 기업공개(상장)을 추진하면서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에 대한 처리는 물론 보험사의 상장여부가 적절한지 논란이 됐다. 그 배경은 보험사가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들이 가입한 유배당상품으로 성장했는데, 그 이익을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에게 배당하지 않은 채 주식회사로 상장을 하는 게 맞느냐는 이유에서다.
보험회사는 주식회사보다 상호회사 성격이 짙다. 상호회사란 보험계약자가 주주이자 채권자로 참여하는 비영리법인이다. 주식회사는 이익을 주주에게 배당하지만 상호회사는 계약자에게 이익을 배당한다. 기업 성격도 이익 추구보다는 계약자 보호에 중점을 둔다. 해외의 상당수 보험회사가 상장하지 않고 상호회사를 유지하는 것은 이러한 보험업의 특성 때문이다. 보험산업 전문신용평가회사인 AM베스트에 따르면 상호회사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미국의 스테이트팜이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1230억달러(약 170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이익 배당을 요구하지 않았고, 보험사 상장이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2010년 삼성생명이 상장을 앞두자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 2802명은 자산운용을 통한 이익을 정산해야 한다며 삼성생명을 상대로 배당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3심(대법원) 모두 패소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자산운용이 아닌 장기 투자용으로 보유하기 때문에 팔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매각하지 않았으니 매각차익이 발생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이익이 실현된 게 없어 배당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결국 금융당국은 삼성생명에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회계 처리를 요구했다. 미래에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할 경우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들에게 돌아갈 몫을 재무제표상에 명시하도록 한 조치다.
당시 법원은 삼성생명이 장기투자자산(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해 이익이 실현되면 계약자배당을 받을 수 있고, 보험계약자들의 권리와 삼성생명 상장과는 관련이 없는 점 등을 들어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실현되지 않은 이익에 대해 배당할 수 없다는 삼성생명의 논리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올 2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 일부를 매각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주식 처분에 따라 이익이 실현됐다면 계약자 배당이 이뤄져야 한다.
삼성생명이 성장하는데 기여했던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들에게는 배당을 하지 않았고 이를 통해 얻은 이익을 향유하면서 시총 29조원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주주 배당만 이뤄지고 있다.
삼성생명이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들에게 배당을 하지 않은 점을 꾸준히 지적해 온 김광중 변호사(법무법인 클라스한결)는 소송을 검토 중이다. 김 변호사는 “금융당국이 삼성생명 일탈회계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지 않은 상태라 신중하지만 법원의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며 “삼성생명 일탈회계를 금융당국이 용인하느냐 여부에 따라 소송의 주장 논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고, 이후 경과에 따라 소송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계기준 바뀌었는데 보험만 예외 = 이후에도 삼성생명이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들에게 이익을 배당하지 않는 점, 계약자들에게 배당하지 않은 이익의 회계처리 적정성 등은 꾸준히 논란이 제기돼 왔다.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들이 소송에서 패하자 이 문제는 일단락 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2023년 새로 적용되는 회계기준 IFRS17로 인해 다시 불거졌다. 새로운 기준을 적용할 경우 계약자지분조정 항목은 유지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회계기준의 신뢰성, 통일성을 위해 보험업도 새 회계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금감원은 보험사들의 예외를 인정하는 ‘일탈회계’를 꺼내들었다. 보험업계 특히 삼성생명에 대한 특혜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금융당국은 과거 회계기준에서 재무제표 기준일 현재 유배당상품의 배당재원인 평가이익 등의 일정 비율을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 몫으로 보고 이를 계약자지분조정(부채)으로 계상하도록 했다. 하지만 새로운 회계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
‘계약자지분조정’은 기업의 자산을 자본과 부채로 구분할 때 부채에 해당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회계상 부채는 기업이 회피할 수 없는 현재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계약자지분조정이란 미래에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들에게 배당할 배당이익을 이야기 한다. 이는 현재 의무가 아닌 미래의 의무, 잠재적 의무에 해당한다. 부채의 요건에 맞지 않는다.
실제 삼성생명은 2024년 사업보고서에 계약자지분조정과 관련해 ‘미래 잠재적 의무’라고 주석으로 기재했다. 회계전문가들은 현재가 아닌 미래에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의무’로 본 것이라는 지적을 했다. ‘미래 잠재적 의무’ 표현은 2025년 반기보고서에서는 사라졌다.
이한상 회계기준원 원장은 “삼성생명이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 돈으로 산 삼성전자 주식 등에 대해 보험 부채를 설정하지 않았다”면서 “팔 계획이 없으니 돌려줄 돈도 없고, 따라서 부채도 없다는 황당한 배짱 논리”라고 평가했다.
경제개혁연구소가 22개 주요 생명보험사의 지난해 말 기준 감사보고서 등을 열람한 결과 6개사는 계약자지분조정에 대한 언급이 없다. 나머지 16개사는 IFRS17 도입 이전 과거 회계기준에 따라 계약자지분 조정으로 회계처리를 했다. 주석을 통해 계약자지분조정을 기재한 16개사 중 4개사의 계약자지분조정 금액은 0원이고, 7개사는 마이너스(-)였다. 유배당계약자들에게 지급할 배당금이 있다고 기재한 생명보험사는 5개사인데 삼성생명은 7조3340억원, 나머지 4개사는 1224억원이었다.
삼성생명은 계약자지분조정 7조3340억원을 2024년말 부채로 인식하고, IFRS17에 따른 보험부채는 0으로 정리했다. 이를 놓고 회계분야 전문가들은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에게 미래에 지급할 것으로 예상되는 배당금이 0원’이거나 보험부채 측정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은정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공인회계사)은 “삼성생명이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 돈으로 그룹 총수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향후에도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라고 평가했다.
박정혁 회계기준원 연구위원은 최근 “삼성생명이 계약자지분조정을 ‘잠재적 의무’라고 스스로 인정한 순간, 이미 부채로서 충족 요건 미달”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생명이 IFRS17을 따를 경우 계약자지분조정 금액이 재무제표에 부채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그 금액이 부채 요건을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삼성생명이 ‘잠재적 의무’라는 모호한 용어 하에 과거 관행대로 부채로 계상해, IFRS17의 일관성과 국제 비교가능성을 훼손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삼성생명 측은 “유배당보험상품계약자들 몫은 감독규정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며 “ 특히 유배당보험상품이 고금리 시기에 판매돼 손실이 더 크다”고 밝혔다.
오승완·이경기 기자 osw@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