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방안에 목소리 내는 사법부

2025-09-02 13:00:10 게재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내부망에 “비상한 상황”

특위 제출한 의견 공개, 전국판사 의견 수렴키로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는 사법부 독립 침해 소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 방안에 대법원이 ‘비상한 상황’이라며 전국 법원장 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또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등을 뼈대로 하는 내란특별법과 관련해 사법권 독립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제출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어 관심을 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전날 법원 내부망(코트넷) 법원장 커뮤니티에 ‘사법개혁 논의와 관련해 드리는 말씀’이라는 글을 올려 ‘민주당 국민중심 사법개혁 특별위원회’(특위)가 논의하는 사법개혁 5개 의제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특위가 추석 전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추진하는 사법개혁 5개 의제는 △대법관 증원(14→30명) △대법관 추천 방식 개선 △법관 평가 제도 개선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등이며, 이에 대해 대법원이 입장을 정리해 내놓은 것은 처음이다.

천 처장은 “종래 범국가적 사법개혁 논의의 과정에 비추어 볼 때 사법부 공식 참여의 기회 없이 신속한 입법추진이 진행되고 있어, 그간 다양한 방법으로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하려는 노력을 해왔음에도 이례적인 절차 진행이 계속되고 있는 비상한 상황”이라며 “이에 조만간 법원장님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갖고자 검토하고 있다. 각 의제들에 대해서 법원장님들께서는 각 소속 법관들의 의견을 널리 수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통상적 현안의 경우 대법원이 소속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대처해온 기존 수준을 넘어 전체 구성원의 뜻을 모아 사법부 공식 의견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이 가장 우려하는 사안은 대법관 수 증원안(14명→30명)이다. 민주당 특위는 사건 적체 해소를 명분으로 대법관 수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과도한 증원은 재판연구관 인력 등 대규모 사법자원의 대법원 집중을 초래해 사실심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하급심 인력과 자원이 빠져나가면 오히려 전체 재판의 속도와 품질이 저하될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외부 인사를 포함한 법관평가위원회 개편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이다. 천 처장은 “외부 평가와 인사 개입을 통해 법관의 인적 독립과 재판의 독립이 흔들릴 수 있다”며 “사법의 근간을 해칠 수 있는 제도 변화는 법관 사회에서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에 대해서는 원칙적 찬성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미확정 형사판결의 경우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천 처장은 “국민의 사법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취지에는 적극 공감하지만, 확정되지 않은 형사판결을 공개할 경우 무죄추정 원칙이나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될 수 있다”며 “입법 과정에서 보완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조만간 전국 법원장 회의 개최를 검토하며, 사법개혁 관련 현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천 처장은 “각 법원장께서는 소속 법관들의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주길 부탁드린다”며 “사법개혁 논의가 정치적 상황에 휘둘리지 않도록 법관사회의 목소리를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천대엽 처장은 1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 “사법부 독립에 대한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천 처장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가’라는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천 처장은 “헌법상 사법권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사법부에 귀속돼있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면서 국회 등 외부 기관이 특별재판부 법관 임명에 관여한다면 “사법의 독립성, 재판의 객관성·공정성에 시비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반민족 행위자 처벌을 위한 특별재판부, 3·15 부정선거 행위자 특별재판부 등 과거 운영된 특별재판부들 역시 “당시 헌법에 근거를 뒀다”며 “어떤 경우에도 헌법에 정해진 사법부 독립은 존중돼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천 처장은 “(내란특별재판부가 재판할 경우) 피고인들이 ‘위헌적 조치’라는 주장을 할 텐데, 만약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단을 받게 되면 이런 역사적 재판이 무효가 돼버리는 엄중한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며 “이런 견지에서 이 부분은 매우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29일 이런 내용을 담은 ‘12.3 비상계엄의 후속조치 및 제보자 보호 등에 관한 특별법안에 대한 검토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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