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조업벨트 쇠퇴…철강·조선 이어 자동차까지 위기감 고조
닛산 요코스카 공장 폐쇄로 지역경제 긴장
관세전쟁으로 해외진출 기업 유턴 등 기대
일본내 제조업 벨트 쇠퇴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닛산자동차가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 있는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하면서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다. 한국과 중국 기업에 밀려 철강과 조선 등의 분야에서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자국내 공장이 폐쇄되는 데 따른 지역경제 침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닛산은 지난 7월 일본내 주력 거점인 요코스카시에 있은 공장을 2027년 말 폐쇄한다고 밝혔다. 이반 에스피노자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공장 폐쇄로) 아픔이 따르는 결단이지만 회사를 다시 성장 궤도로 올려놓기 위해 폐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밝혔다.
이 공장은 닛산이 1961년 조업을 시작한 이후 주력 차종을 생산해 왔다. 도쿄돔 36개 크기의 공장에서는 지금도 4000명 가까운 종업원이 일하고 있다. 공장이 폐쇄될 경우 지역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클 전망이다.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최근 특집 기사에서 미국의 ‘러스트벨트’를 닮아 간다며 일본 제조업벨트의 쇠퇴를 크게 다뤘다.
요코스카역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닛케이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닛산 공장은 이 지역의 상징과 같다”며 “폐쇄한다는 발표를 보고 믿고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이 자영업자는 3대째 지역에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닛산차를 이용해 생업을 이어왔다고 했다.
닛산의 공장 폐쇄는 2004년 문을 닫은 도쿄 무라야마공장 이후 20여년 만이다. 무라야마공장 폐쇄 이후 공장터는 아직도 빈공터로 남아 있는 상태다.
자동차 공장의 폐쇄는 하청업체의 위기로 이어진다. 창업한지 70년된 아오키제작소는 오랜기간 닛산자동차에 배기 관련 부품을 납품해왔다. 특히 2002년 무라야마공장 폐쇄 전까지 매출의 100%를 닛산에 납품했다.
이 업체는 2000년대 초반 100억엔(약 940억원)에 달했던 매출이 현재 10억엔(약 94억원)까지 줄었다. 12년 연속 적자를 거듭했고, 일부 공장을 폐쇄하고 종업원도 감축했다.
하지만 주물 기술에서 가지는 장점을 살려 판로를 다각화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수주가 격감하면서 닛산뿐만 아니라 다른 거래처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 닛산 요코스카공장 폐쇄에 따른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제는 이러한 중소 하청업체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 하청업체는 원청회사의 공장 폐쇄 등의 조치로 커다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본 제조업벨트의 핵심인 태평양 연안의 4대 공업지대는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1990년대 이후 한국과 중국 등의 조선과 철강 업체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대해 나가면서 일본 기업은 공장 폐쇄 등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엔고에 따른 해외 공장이전 등도 자국내 제조업 공동화를 부추켰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일본 경제산업성의 일본내 공장입지 관련 동향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로 등록한 공장입지 건수는 854건으로 1989년과 비교해 80% 감소했다.
다만 최근 미국발 관세 전쟁과 엔저 등으로 일부 제조기업의 일본 회귀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일본정책투자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설비투자계획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제조업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6% 증가했다. 올해도 제철소 고로를 전기고로로 교체하고, 2차전지나 반도체 재료 생산설비를 구축하는 등의 투자가 비교적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다.
정책투자은행 관계자는 “경제안보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엔저로 돌아서면서 국내로 일부 생산시설을 옮기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며 “미중 대립으로 생산거점이 중국에 있는 장점이 약해지면서 제조업의 국내 회귀를 촉진하고 있다”고 했다. 예컨대 도요타는 아이치현 도요타시에 새로운 차량 조립공장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산업용지 개발 등을 담당하는 일본입지센터 조사에서도 자국내 거점 입지계획을 가진 일본 기업이 증가하는 경향이다.
일본으로 생산거점을 확대하겠다는 대기업은 30% 중반대로 미국으로 이전(20%대)보다 높았다. 이에 비해 생산시설을 축소하겠다는 지역은 중국(40%대)이나 미국(10%대 후반)이 일본(10%대 초반)보다 높았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