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보이지 않던 거대 파도 아시아계, 미국 정치를 흔든다

2025-09-02 13:00:12 게재

현재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인구 집단은 아시아계 미국인이다. 미국 통계청의 자료를 분석한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아시아계 미국인 인구는 약 2480만명으로, 2000년의 1190만명에서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이는 전체 미국 인구의 약 7%에 해당한다.

이들의 성장속도는 미국 내 다른 인종집단과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같은 기간 히스패닉 인구는 2000년 약 3500만명에서 2023년 약 6200만명으로 증가하며 여전히 가장 큰 규모의 소수인종집단이지만 증가율은 약 77% 수준에 머물렀다. 아프리카계 인구는 2000년 약 3500만명에서 2023년 약 4700만명으로 증가하며 증가율이 약 34%에 그쳤다. 한때 미국 사회의 다수를 차지했던 백인 인구는 이제 감소세로 돌아섰다.

반면 아시아계 미국인은 같은 기간 108% 이상 증가해 어떤 인종과 비교해도 더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비록 규모 면에서는 여전히 히스패닉이나 흑인보다 작지만 이들의 인구학적 성장세는 압도적인 수준이다.

아시아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인구집단

이들의 이민 배경이나 출신 국가도 다른 인종집단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다양하다. 이들은 다수의 아시아 국가에서 다양한 이유로 미국으로 이주해온 이민자들과 그 후속 세대다. 그래서 각 국가·민족이 지닌 언어 종교 문화의 다양성이 아직도 고스란히 그들의 미국 생활 곳곳에 남아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문화적 뿌리가 바로 아시아계 미국인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출신 국가별로 이들을 구분해보면 중국계 인도계 필리핀계 베트남계 한국계 일본계가 전체의 86%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미얀마 캄보디아 등 다양한 국가 출신들로 구성된다. 현재 중국계와 인도계는 모두 500만명 이상을 기록해 아시아계 미국인 집단 내 최대 집단으로 자리하고 있다.

전통적으로는 중국계가 아시아계 미국인의 가장 큰 인구 비중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인도계 이민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며 그 우위를 위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도계 인구의 증가 배경으로 고급 인력 중심의 이민정책과 정보기술(IT) 산업·전문직 확산을 꼽는다. 특히 1990년대 이후 H-1B 비자 제도를 통해 유입된 인도 출신 이민자들이 미국 내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 확대를 주도하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중요한 특징을 또 하나 꼽자면 미국 내 다른 인종·민족집단보다 평균적으로 교육수준 가구소득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아시아계 미국인 성인의 약 54%가 학사 학위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전체 미국 성인 평균(약 33%)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또한 아시아계 미국인 가구의 중위소득은 약 10만달러로 전국 평균(약 7만5000달러)을 상당히 상회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특징의 배경으로 이민 정책과 높은 교육열이 투사된 문화적 요인을 꼽는다. 특히 1965년 이민법 개정 이후 미국은 고학력 전문직 인력의 이주를 적극적으로 허용해 왔다. 그 결과 엔지니어 의사 연구자 등 전문직 종사자 비중이 높아졌고, 1990년대 이후에는 H-1B 비자를 통한 IT 전문인력 유입까지 두드러졌다.

동시에 아시아계 이민가정은 성공을 위한 사회적 사다리로 교육을 중시하는 문화적 가치를 강하게 공유하고 있다. 이처럼 고학력·전문직 중심의 이민 구조와 높은 교육열은 아시아계 미국인 집단 전체의 평균 교육수준과 소득을 끌어올린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들의 높은 교육수준과 가구소득 때문에 미국 사회에서는 이들을 종종 ‘성공한 이민집단’으로 평가한다.

‘모범적 소수자’ ‘영원한 외국인’ 이미지

그러나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뿌리 깊은 차별과 선입견에 직면해 있다. 대표적인 고정관념이 바로 ‘모범적 소수자(Model Minority)’라는 이미지다. 이 표현은 성실한 집단으로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학업 성취와 직업적 성공만을 강조해 이들이 미국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배제를 축소·왜곡한다. 게다가 다른 소수인종 집단과 교묘하게 비교해 오히려 이들의 정치적 목소리마저 약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또 다른 뿌리 깊은 편견은 ‘영원한 외국인(Perpetual Foreigner)’이라는 인식이다. 미국 사회에 수 세대 동안 정착해 온 이민자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계 미국인은 외모나 이름 때문에 여전히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완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직장에서나 일상생활에서 “어디서 왔느냐?”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는 경우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다. 평범한 일상에서 미국인이 아닌 외부인으로 취급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최근 아시아계 미국인 사회를 가장 강하게 뒤흔든 문제는 혐오범죄의 급증이다. 코로나 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이후 아시아인을 겨냥한 폭력과 괴롭힘이 미국 전체에 많이 늘어났다. 2022년 아시아계 미국인 혐오범죄 피해 보고서(Stop AAPI Hate)에 따르면 2020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약 1만1500건의 혐오 사건이 접수됐다. 이 중 상당수는 언어적 괴롭힘(67%), 배제나 차별 행위(16%), 신체적 폭력(16%)으로 분류됐다. 혐오범죄의 확산은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 내부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자각으로 이어졌다. 미 전역에서 ‘아시안 혐오범죄 멈춰라(Stop Asian Hate)’ 시위가 열렸고, 시민단체와 지역사회는 정책적 대응을 요구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2021년 5월 ‘COVID-19 Hate Crimes Act’에 서명해 아시아계 혐오범죄 대응을 강화하고 연방 정부 차원에서 집계·대응 체계를 마련했다. 일련의 사건들은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더는 침묵할 수 없다’라는 경각심을 확산시키며 정치적 행동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투표율 증가로 정치적 존재감 과시

최근 들어 증가한 아시아계 미국인의 투표율 역시 눈여겨볼 부분이다. 버클리대학의 아시아계 미국인 조사 센터에 따르면2020년 대선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유권자들의 투표율은 2016년 대비 약 40% 증가해 (49%→60%), 모든 인종·민족 집단 가운데 가장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2024년 대선에서도 이들의 높은 투표율은 그대로 이어졌다. 미국 인구조사분석 결과 이들의 투표율은 2020년보다 약 2%p 낮은 58%였다. 이는 미국 전체 투표율(약 65%)이나 백인(약 70%)에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지만 아프리카계(약 60%)와 비슷하고 히스패닉(약 51%)보다 높은 투표 참여율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투표율 증가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로 이어졌다. 그중 하나가 2021년 조지아 주 상원 결선투표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치 참여가 눈에 띄게 늘며,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확보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이들의 정치적 존재감은 선거 격전지 중 하나인 네바다주에서도 확인됐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이 지역 전체 유권자의 약 10%를 차지하며, 2024년 대선에서는 각 진영에서 집중 공략 대상이 되었다. 해리스 부통령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아시아계 유권자 대상 캠페인을 직접 유치했고, 공화당 또한 라스베이거스 차이나타운에 거점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유권자 확보 전략을 폈다.

물론 한국의 대외정책과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치적 성장이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미동맹과 인도·태평양전략 등 아시아를 둘러싼 외교 현안은 미국 내 아시아계 유권자들의 정치적 정체성을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한인 출신 정치인인 앤디 김(민주당), 영 김·미셸 스틸(공화당) 의원은 각각 민주·공화 양당 내에서 아시아와 한미 관계를 언급하며 연방 무대에서 존재감을 강화하고 있다. 본국의 외교적 위상은 곧 아시아계 미국인 정치인들의 대표성과 영향력 확대를 뒷받침하는 상징적 배경이 되고 있다.

김찬송 위스콘신대 정치학, 미국 선거·여론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