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종합전형 진로 역량 평가, 대학별 차이 커져
건국대 경희대 등 진로 역량 40% 반영-서강대 성균관대 전공 적합성 배제 … 대학별 평가 요소 달라
학생부종합전형의 평가 요소는 대학마다 차이는 있지만 학업 역량, 진로 역량, 공동체 역량으로 크게 나뉜다. 진로 역량은 종전에 쓰이던 전공 적합성을 포함하는 용어로 전공 대신 계열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다. 전공 적합성에 국한하지 않고 넓게 평가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건국대 경희대 등은 계열 적합성에 가까운 셈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는 전공 적합성을 안 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대학들이 많아졌다.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 대학이 서류 평가에서 주요하게 보는 평가 요소 중 차이가 큰 부분이 진로 역량 관련 항목이다. 건국대 경희대 중앙대 한국외대 등은 진로 역량으로, 고려대는 자기계발 역량, 동국대는 전공 적합성, 서강대는 성장 가능성, 서울시립대는 잠재 역량, 성균관대는 탐구 역량 등의 이름으로 평가한다. 대학 내에서도 모집 단위에 따라 진로 역량 또는 성장 역량으로 다르게 평가하기도 한다. 학생부에서 진로 역량을 평가하는 대학의 관점을 들여다본다.
“전공 적합성은 지원 전공(계열)과 관련된 분야에 관한 관심과 이해, 노력과 준비 정도를 의미한다. 진로 역량은 단편적으로 전공에 대한 범위가 확대됐다기보다는 폭넓은 관점에서 학생 역량을 들여다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진로 역량 평가는 대학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2022년 2월 건국대 경희대 연세대 중앙대 한국외대 등 5개 대학이 제시한 ‘NEW 학생부종합전형 공통 평가 요소 및 평가 항목’을 기점으로 많은 대학이 전공 적합성에서 진로 역량으로 평가 요소를 변경했다.
건국대는 종합전형인 KU자기추천에서 일반 모집 단위는 진로 역량 40%를 반영하지만, KU자유전공학부는 진로 역량 대신 성장 역량을 평가하면서 반영 비율도 50%로 높였다. 경희대도 네오르네상스에서 일반 모집 단위는 진로 역량 40%를 반영하지만 자율전공과 자유전공은 진로 역량이 아닌 자기 주도 역량 40%를 반영한다.
서울시립대는 진로 역량 대신 잠재 역량을 반영하는데 종합전형 면접형은 잠재 역량 40%를, 종합전형 서류형은 잠재 역량 50%를 반영한다. 중앙대도 종합전형을 이원화해 운영하는 대표적인 대학으로, CAU융합형인재는 진로 역량 30%, CAU탐구형인재는 진로 역량 50%를 반영해 차별화했다.
정제원 서울 숭의여고 교사는 "대학들이 진로 역량이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상위권 대학은 진로에 대한 탐색, 노력, 활동보다는 학교생활의 우수성 자체를 좀 더 의미 있게 평가하는 느낌이 크다"고 말한다.
◆전공 적합성에서 진로 역량으로 변화 = 진로 역량으로의 변화는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전공 적합성은 대학 평가자의 관점에 가깝다면 진로 역량은 수험생의 관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상근 서울 덕원여고 교사는 "전공 적합성은 지원하려는 전공(계열)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면, 진로 역량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다룬다"며 "중간에 진로가 변경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5개 대학을 시작으로 여러 대학이 ‘전공’에서 ‘진로’로 서류 평가 요소를 바꿨다. 이는 고교 입학 후 조기에 진로를 정해야 하고 대학의 특정 전공에 맞춰 전공 탐색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줬고 학교 활동 전반에서 다양한 진로 탐색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대학마다 진로 역량에 해당하는 평가 항목을 탐구력, 성장 역량, 발전 가능성, 잠재 역량 등 다양하게 응용한다. 대학마다 결은 조금씩 다르지만 의미는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용어 자체보다는 대학의 세부 평가 요소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강경진 서강대 책임입학사정관은 "대학이 전공 적합성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특정 모집 단위에 매몰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어떤 목표를 주도적으로 탐구하고 실천해나간 과정을 평가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2~3등급 지원 대학에서 진로 역량 영향력 커져 = 진로 역량의 영향력은 지원하는 대학의 수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상위권 대학은 지원자 집단의 특성상 교과 선택이나 교과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등 진로 역량의 차이가 크지 않다.
이와 달리 1등급 후반에서 2등급 중반대가 많이 지원하는 대학은 기존의 진로 역량을 중요하게 살핀다. 다만, 학교 현장에서 느끼기엔 이들 대학도 지원 모집 단위, 즉 계열과 관련된 교과목 선택이나 성취 수준 등 교과목의 우수성을 중심으로 진로 역량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2등급 중후반대 이하의 지원자가 몰리는 수도권 대학에선 진로 역량의 영향력이 크다. 이들 대학은 교과목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진로와 관련된 다양한 탐구 활동, 창의적 체험 활동을 광범위하게 들여다보는 느낌이 강하다.
김 교사는 "진학 지도를 하며 느낀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1등급대가 주로 지원하는 대학은 전체적으로 학업 역량 중심으로 평가한다고 생각한다"며 "지원자 집단의 특성상 교과 선택이나 교과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등 진로 역량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윤지혜 숭실대 입학사정관은 "숭실대는 학업 역량을 20%만 반영하고 진로 역량을 50% 반영한다"며 "진로 역량에선 진로 탐색 노력의 배점이 가장 높고 그다음이 전공(계열) 적합성"이라고 전한다.
조경연 서울시립대 입학사정관은 "서울시립대는 모집 단위별 인재상이 있을 만큼 전공 적합성이 중요한 편"이라며 "학업 역량보다는 해당 모집 단위에 열의와 역량, 인재상을 갖춘 학생을 선발한다"고 설명한다.
진로 역량은 예전의 전공 적합성보다는 확실히 계열 중심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예전엔 탐구력을 전공 적합성에서 평가했다면 요즘에는 학업 역량에서 평가하는 대학이 많아졌듯 학업 역량과 진로 역량의 연관성은 매우 높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하면서 주제를 찾거나 주제에 도달해나가는 과정 등이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종합전형은 교과전형과 달리 정량적인 학교 성적만으로 평가하진 않지만 학생부 위주 전형이기에 학교 성적을 뛰어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3등급대지만 진로 역량이 우수하다면 지역 거점 국립대나 국민대 명지대 상명대 등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참고로 진로 역량이 비슷한 등급대에 비해 우수하다면 보통 전년도 70% 컷보다 0.5등급 정도 높게 생각해도 된다.
진로 역량을 중시하는 대학으로는 건국대 국민대 경희대 동국대 서울시립대 숭실대 등을 꼽는다. 서류 평가에서 진로 역량을 주요하게 들여다보는 대학을 꼽자면 가톨릭대 국민대 숭실대 세종대 등 2등급에서 3등급 초반 학생들이 지원하는 대학과 상명대, 지역 거점 국립대 등 3~4등급 학생들이 지원하는 대학이 있다.
◆대학마다 다른 진로 역량 평가 기준 = 김태희 학생은 항공기 개발자를 꿈꾸며 서울 숭의여고 3년간 체계적으로 진로 역량을 쌓아온 사례다. 고1 때 학교에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견학하면서 우주선과 항공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항공기에 대해 더 알아보던 중 도심항공교통(UAM)을 알게 되었다.
"교통 체증 없이 도심을 날아다니는 교통수단을 떠올리니 내가 직접 개발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됐어요. 이를 계기로, 항공기에 대해 더 알아보던 중 도심 항공교통에 관심을 두게 되었죠."
김 학생의 고교 학생부에 드러난 강점은 3가지다. 첫째, 학교에 개설된 모든 과학 및 수학 교과목을 이수했다는 점이다. 수학은 ‘미적분’ ‘확률과 통계’ ‘기하’를, 과학은 I·II 8과목을 모두 수강했다.
두 번째는 수학 과학 과목의 성취도가 다른 과목에 비해 우수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해당 분야에 대한 학업 역량과 진로 역량을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을 꼽을 수 있다.
"진로와 관련된 프로젝트뿐 아니라,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심화해 직접 실험을 진행했고, 특히 물리학 과목은 심화 실험을 통해 이론적 지식을 실제 적용해보는 등 관심 분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잘 드러냈어요."
반대로 아쉬운 점은 다양한 활동을 챙기다 보니 시험 기간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해 전체 평균 등급이 기대보다 낮게 나왔다는 것이다. 시간 관리가 미흡했고, 그 결과 다른 주요 과목의 성적을 올리는 데 집중할 시간이 부족했다.
수시 원서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은 학교마다 평가의 초점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학생부를 분석해보니 학업 성취나 리더십보다는 진로 역량, 특히 전공 관련 활동과 탐구 경험이 두드러졌다.
"그래서 이런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대학을 중심으로 선택했어요. 단순히 성적만 보는 곳보다는, 전공 적합성과 진로 역량을 높게 평가하는 학교에 집중적으로 지원했죠."
정 교사는 김태희 학생에 대해 “수학 과학의 학업 역량, 진로 역량이 우수했다”며 “전체 과목의 평균은 2등급 후반이었는데 수학 과학은 1-2등급이었고, 관련 교과목 선택을 비롯해 물리학, 기계 관련 활동들도 굉장히 다양하고 깊이 있게 했다”고 평가했다.
“숭실대는 진로 역량, 특히 전공 적합성을 의미 있게 평가하는 대표적인 대학이라 태희 학생을 제대로 평가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좋은 결과를 얻었죠.”
김 학생은 종합전형 지원을 앞둔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진로 역량이 학업 역량보다 강하다면 전공과 관련된 활동과 경험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학과를 추천해요. 우선순위를 대학에 두고 지원하는 것보다는, 본인이 준비한 진로 활동과 역량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거든요.”
종합전형은 학생부에서 자신의 강점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전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성적만 보는 곳보다는, 전공 적합성과 진로 역량을 높게 평가하는 학교를 선택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기수 기자·민경순 내일교육 리포터 hellela@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