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케이팝 본고장, 서울엔 무대가 없다
케이팝은 이제 세계인의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는 ‘오징어 게임’의 각종 기록을 넘어서고 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는 전세계 수십만 명을 모으는 무대를 만들고 해외에서의 공연 매출만으로도 수천억원대 규모를 기록한다. 그러나 정작 종주국인 한국에는 이들의 공연을 담아낼 그릇, 즉 전문 공연장이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에서 대형공연을 열 수 있는 공간은 고척스카이돔과 서울월드컵경기장 정도다. 잠실주경기장은 공사 중이고, CJ 라이브시티 아레나는 중단됐다. 그 결과 해외 톱스타들은 싱가포르 도쿄 등으로 향하고 케이팝의 본고장인 서울은 해외 투어 포스터에서 빠지기 시작했다.
서울 대신 떠오르는 곳은 경기도 고양이다.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이 서울의 대형 공연장을 대신하고 있다.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에 따르면 전세계 공연 일정에서 서울이 사라지고 고양이 들어가는 실정이다.
문제는 단순히 서울에 큰 공연장이 없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체육시설을 빌려 쓰는 한계 때문에 무대설치에 수억원이 소요되고 일정 확보가 어렵다. 중형 공연장 부족도 심각하다. 약 5000석 규모 공연장이 없어 신인·중견가수들은 설 무대를 찾지 못하고 해외로 눈을 돌린다. 케이팝의 성장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공연산업의 구조적 불균형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영국 토트넘 스타디움은 축구장을 넘어 지역 경제를 이끄는 문화허브로 자리 잡았다. 싱가포르는 대형 공연장을 전략적으로 건립해 콜드플레이, 테일러 스위프트 공연을 독점 유치하며 관광산업까지 연계한다. 일본 역시 도쿄에만 7개의 대형 공연장이 있고, 인접 지역까지 합치면 1만석 이상 공연장이 10개가 넘는다. 공연장은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도시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기반시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재명 대통령은 5만석 규모 대형 공연장과 중소형 공연장 확충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4일 간담회에서 일본과 비교하며 한국의 공연장 부족 해소 필요성을 강조했다. 내년도 문체부 예산안에도 5억원 규모의 관련 예산이 편성됐다. 하지만 공연장 건립에는 최소 5년 이상이 걸린다. 그 사이 임시 공연장 활용, 기존 시설 리모델링, 지자체와 민간협력을 통한 다층적 대안이 병행돼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모두 힘을 합해야 한다.
케이팝의 국제적 위상을 떠받칠 무대가 국내에 부재한 현실은 문화산업의 모순이다. 공연장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공간이 아니라 산업생태계의 토대이며, 도시의 문화적 자산이다. 다음 세대의 문화적 토양을 위해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한다. 케이팝의 세계적 성과를 서울에서도 당당히 이어가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