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30 가거도 독실산길

우리나라 서남단, 바다의 국경 섬을 걷다

2025-09-05 13:00:02 게재

필자는 최근 ‘바다의 국경 섬을 걷다’라는 책을 펴냈다. 굳이 책 제목에 국경이란 단어를 넣은 것은 섬이 가진 영토 안보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휴전선만 국경이 아니다. 서해5도와 독도만 국경이 아니다. 동서남해 외곽의 섬들은 모두 중국이나 일본 북한 공해 등과 인접한 국가의 경계, 국경이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국경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우리나라 해상영토의 시작점인 영해기점 23곳 중 20곳이 섬에 있다. 그에 반해 육지부의 영해기점은 3곳뿐이다. 섬들이 있어서 우리나라는 육상영토보다 4.5배나 큰 해상영토(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 대륙붕)를 가질 수 있다. 섬이 있어 더 많은 어족자원과 바닷속 지하자원까지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섬들은 영토 안보 가치에 더해 경제적 가치도 막대한 나라의 보물 섬이다.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위치한 신안의 가거도 또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경의 섬이다.

가거도, 우리나라 서남쪽 끝에는 독실산길이 있다. 사진 섬연구소 제공

가거도에는 백섬백길 42코스인 가거도 독실산길이 있다. 가거도항에서 출발해 달뜬목, 독실산, 항리마을 섬둥반도까지 이어지는 8.3㎞의 트레일인데 산과 바다의 절경은 물론 마을의 속살까지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가거도에서 중국까지는 390㎞, 필리핀까지는 2180㎞, 서울까지는 420㎞의 거리다. 서울보다 중국이 가깝다. 그래서 “중국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농담같은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과거에도 가거도는 중국 대륙과 한반도 사이를 비스듬히 건너는 황해 사단 항로 중간에 위치해 외국 배들이 수시로 거쳐갔다. 중국 송나라 때 사신단의 일원으로 고려를 방문한 서긍의 정세보고서 ‘선화봉사고려도경’에도 가거도에 대한 기록이 있다.

서긍을 비롯한 사신단 200여명은 8척의 배에 나눠타고 송나라 황제 휘종의 명을 받고 고려를 방문했다. 1123년 5월 28일 송나라 영파를 출발한 서긍은 6월 2일 협계산을 지났다. 서긍은 협계산을 중국과 고려의 경계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 협계산이 바로 가거도다. 그때도 국경이었다.

가거도는 일제에 의해 소흑산도라 이름 붙여졌으나 해방 이후에야 본 이름을 되찾았다. 본래는 가거도가 아니라 우이도가 소흑산도였는데 일제가 편의상 가거도를 소흑산도로 불렀던 것이다.

가거도는 서남해의 어업 전진기지로 어부들에게는 친숙한 섬이었지만 뭍의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영화와 방송 등을 통해 소개된 뒤 방문객이 늘어났으나 워낙 뱃길이 험해 여전히 뭍에서 멀기만 하다.

가거도에는 대리 항리 대풍리 등 세 개의 자연부락이 있는데 대부분의 주민들은 큰 마을 대리에 모여 산다. 이 마을은 식당과 여관 등 편의시설과 행정기관까지 몰려있어 마치 해상 도시를 방불케 한다. 중국과 경계인 탓에 풍랑이 심하면 피항을 온 수백, 수천척의 중국 어선들로 가거도 앞바다가 가득 찬다. 그때는 가거도 주민들도 무섭다고 한다.

그 외롭고 무서운 곳에서 섬사람들은 천년 넘게 우리의 영토와 해상영토를 지키며 살아왔다. 우리가 가거도를 비롯한 국경의 섬사람들을 존경해야 할 이유다.

가거도 섬길을 걸으며 문득 깨닫는다. 휴전선을 군인들이 지켜주고 있기에 안심하고 일상을 영위하는 것처럼 이 소중한 바다의 국경을 지켜주는 섬사람들이 있어서 우리가 안심하고 잠들 수 있구나.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