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 독립성 되레 후퇴 우려, 금융회사 부담도 커져
금융감독체계 개편안, 금감위 신설하고 금감원도 소비자 기능 쪼개
정책·감독 분리하다지만 금감위 조직 확대되면 관치 논란 불거질 듯
국정기획위 원안과 차이 … 금융권 시어머니 4곳, 감독분담금도 늘어
금융위원회를 해체하고 금융감독위원회를 신설해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기능을 분리하는 내용의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안이 정부조직 개편의 일환으로 확정됐다.
금융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등이 우선시 되면서 금융감독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었고 금융감독의 독립성을 위한 금융감독체계 개편의 필요성은 새 정부 출범 때 마다 제기됐다.
하지만 이번 개편 방안은 오히려 독립성이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금융회사의 부담과 시장의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제시한 원안과도 차이가 있어서 실제 실행되기 전 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7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대통령실(당·정·대)은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정부조직 개편안을 확정했다.
금융위가 맡고 있는 국내 금융정책(금융정보분석원 포함)은 신설되는 재정경제부로 옮겨지고 금융위는 신설되는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로 명칭을 바꾸고 금융감독 기능만 맡게 된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소비자 기능이 분리돼 금감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으로 쪼개진다. 금소원이 신설되는 것이다.
금융정책이 재정경제부로 가면서 금융회사들은 재정경제부, 금감위, 금감원, 금소원 등 신경써야 할 기관이 4곳으로 늘었다. 금융권에서는 소위 ‘시어머니’가 4명 생기게 되는 셈이라며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금소원이 신설될 경우 금융권에서 부담해야할 감독분담금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금감위, 제재·분쟁조정 기능 가져가나 = 금감위 산하에는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가 생긴다. 증권선물위원회는 금융위 산하에 있는 조직이지만,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는 신설된다.
일각에서는 현재 금감원이 수행하고 있는 금융소비자 분쟁조정 업무를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가 맡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최근 금융위와 금감원 수뇌부가 만나 금감원의 제재와 분쟁조정 기능을 금감위로 이관하는 문제를 놓고 논의를 벌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금감위 조직이 커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당초 국정기획위는 금감위를 최소화하는 방안에 초점을 두고 금융감독체계 개편 문제를 논의했다. 논의 초기에 18명(위원장 포함 19명)으로 하는 안이 제기됐지만 최종안은 30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제재·분쟁조정 기능을 금감위가 맡게 되면 조직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금감위 조직이 사실상 금융위를 대체하는 것이며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해 금융감독의 독립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민간조직 형태의 금감원이 설립된 이유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관치금융의 폐해를 막기 위해 IMF가 금융감독의 독립성 확보 차원에서 권고했기 때문이다. 이후 금융위 조직이 커지면서 다시 금융감독의 독립성 문제가 불거졌고 정부조직개편 논의와 함께 금융감독체계 개편의 불씨가 됐다.
이번 조직개편 방안에 따르면 금감위가 금감원과 금소원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서 사실상 공무원 조직에 의한 금융감독기구 지휘가 보다 강화돼 관치금융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 있게 됐다.
또 정부는 금감원과 금소원을 공공기관으로 재지정하기로 했다. 금감원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는 것은 지난 2009년 이후 약 16년 만이다. 금감원은 공공기관으로 지정됐지만 감독업무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 차원에서 2009년 해제됐다. 이창규 행안부 조직국장은 “금감원과 금소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건 외부 견제를 보다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금감원은 하는 역할에 비해 외부의 민주적 통제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대한 국회의 직접적인 감독 및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률개정안이 발의돼 있는 상황이지만, 정부가 공공기관 지정을 통해 직접 통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최악이라는 반응이며 ‘이복현 전 원장 시절, 사안마다 전면에 금감원이 나섰던 것에 대한 후폭풍’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금소원 신설, 소비자보호 기능 강화될까 = 정부는 금융소비자보호 기능 강화를 위해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 기능을 떼어내서 금소원을 신설하기로 했다. 금소원에 감독·검사·제재 권한을 주는 게 국정기획위 방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쪽 방향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금감원은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에 주력하고 금소원은 소비자보호를 위한 영업행위 감독 등을 맡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금감원과 금소원의 역할과 권한을 놓고 상당기간 혼선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 과정에서 금융회사와 금융소비자들도 혼란이 커질 수 있다. 대규모 불완전판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두 기관이 검사를 나갈 가능성이 높고, 업무중복과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업무분장이 애매해 책임 회피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2개의 감독기구 운영으로 비슷한 제도를 먼저 시행한 영국에서도 이 같은 지적이 나왔다. 최근 영국 상원 금융서비스 규제위원회는 “각각의 감독기관들이 요구하는 중복적이며 심지어는 모순되기까지 한 요건들이 금융사의 영업을 어렵게 하고 심지어는 핵심적 제도개선도 지연시켰다”고 지적했다.
2023년 IMF는 ‘바람직한 감독, 현장에서 배운 교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효과적인 감독을 위해서는 ‘능력’과 ‘의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의지’와 관련해서는 △명확하고 분명한 임무 △운영상 독립성 △신뢰성 △유능한 인력 △시장과의 건전한 관계 △이사회와의 효과적 파트너십 등 6가지 요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감독체계 개편방안이 실제 실행될 경우 명확하고 분명한 임무, 운영상 독립성, 유능한 인력 등 최소 3가지는 IMF에서 제시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금소원으로 분리될 경우 변호사·회계사 등 전문 인력이 대거 이탈하고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떠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