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명 위기, 우리 잘못 기인”
노만석 검찰총장 대행, 정부조직 개편에 “깊이 반성”
“보완 수사권, 진행되는 과정서 검찰 입장 내겠다”
구체적인 법률안 놓고는 보완수사권 요구 거세질 듯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8일 검찰청을 해체하는 이재명정부의 정부 조직 개편에 대해 “모든 것이 검찰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선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만석 대행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헌법에 명시된 검찰이 법률에 의해서 개명 당할 위기에 놓였다”며 이같이 밝혔다. 노 대행은 “향후에 검찰개혁 방향에 대해 세부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인데 국민들 입장에서 설계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전날 제3차 고위당정협의회를 통해 내년 9월 검찰청을 폐지하고 수사권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기소권은 공소청으로 나누기로 했다. 이에 따라 1948년 법원으로부터 독립해 출범한 검찰청은 7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관할을 놓고 논란이 일었던 중수청은 법무부가 아닌 행정안전부 산하에 두기로 했다. 다만 시행까지는 1년의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 이 기간에 정부는 총리실 산하에 ‘범정부 검찰 제도개혁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고 당과 정부, 대통령실이 협의해 세부 방안을 도출하기로 했다.
이번 개편안으로 수사·기소 분리를 골자로 하는 검찰 개혁의 큰 틀이 제시됐으나, 세부 권한 조율과 검찰 보완 수사권 존폐 등은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 검찰은 검찰청 폐지를 받아들이면서 이후 신설될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남겨 놓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7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결정된 정부조직법에는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여부가 담기지 않은 가운데 향후 이를 두고 여당과 야당, 검찰과 경찰 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검찰 내부에서는 정치 수사 등으로 문제가 된 직접수사 기능은 포기하더라도 사건 ‘핑퐁’으로 인한 수사 지연 방지와 공소 유지, 수사기관 간 견제 필요성 등을 고려할 때 보완수사권만은 검찰에 남겨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이미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 지연 문제가 커진 상황에서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없고 경찰에 대한 ‘요구권’만 갖게 된다면 사건 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핑퐁’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전체 형사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2020년 142.1일에서 수사권 조정 이후 계속해서 늘어나 지난해 312.7일에 달했다. 사건 접수부터 보완수사를 거쳐 최종 처분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4년새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런 가운데 검찰의 보완수사권마저 폐지된다면 경찰과 보완수사 요청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사건 처리가 계속해서 지연되고, 특히 시간적 제약이 있는 구속 사건의 경우 부실 수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도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해서 사건이 경찰로 내려가면 사건번호가 새로 부여된다. 결국 책임감 있게 사건을 관리한다는 개념이 사라져 자칫 사건이 사장되거나 처리가 흐지부지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노 대행은 이날 보완 수사권 존폐 논란이 예상된다는 지적엔 “그것도 앞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검찰이 입장을 내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앞서 노 대행은 지난 4일 부산고검·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적법절차를 지키면서 보완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것은 검찰의 권한이 아니라 의무”라며 보완수사권 폐지에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성명을 통해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경찰의 불송치 전횡을 견제할 장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전건 송치가 배제되고 송치 사건에 대한 보완수사 권한마저 축소하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한편 대검찰청은 과학수사부의 보완수사로 범죄혐의를 밝혀낸 사례를 홍보하면서 검찰의 보완수사권 필요성을 알렸다.
대검에 따르면 1심이 무죄를 선고한 성폭행범 사건에서 대검 과수부가 정밀 DNA 감정으로 결정적 증거를 확보해 2심에서 실형 선고를 이끌어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대검은 “피해자가 사망하면서 자칫 법망을 벗어날 뻔했던 파렴치한 성폭행범을 대검의 세밀한 DNA 감정으로 엄벌했다”며 “과학수사를 통해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