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7세 고시’ 열풍 멈출 해법은 어디에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번지고 있는 ‘7세 고시’ 열풍은 단순한 사교육 과열이나 부모의 조급함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에 9만9000원짜리 문제집을 풀고 대치동 학원의 레벨테스트에 매달리는 부모들의 선택은 우리 사회의 불안심리를 그대로 드러낸다. 더 중요한 질문은 ‘왜 이렇게까지 서두르는가’다. 그 문제집에는 ‘10년 뒤 인류의 삶이 어떻게 변할까’ ‘국적을 바꾼다면 어느 국가로 왜 바꾸고 싶은가’란 영어 질문이 담겨 있다. 만 6세 아이에게 던지는 질문치고는 너무 심각하다. 이는 부모들이 이 나라의 미래를 불투명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뿌리내리고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제조업 경쟁력의 약화, 지역소멸과 인구절벽, 청년고용 불안과 수도권 쏠림은 모두 ‘미래 없음’의 공포를 강화한다. 울산 창원 부산 같은 제조업 거점도시가 흔들리면서 지방 청년은 수도권으로 떠나고 지역 대학은 정원을 채우지 못한다. 청년들은 미래를 외부에서 찾는다. 20대에서 40대까지 약 184조원에서 195조원 규모로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 현상은 단순한 투자트렌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집단적으로 ‘탈한국적 미래’를 모색하는 징후다.
한국사회가 집단적으로 ‘탈한국적 미래’ 모색하는 징후
이는 결코 교육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청년층이 무너지면 국가의 미래도 무너진다. 이미 유럽이 그 전조를 보여주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유럽의 저출산은 2020년대 들어 경제침체로 이어졌다. 프랑스 독일의 1인당 GDP는 미국과의 격차가 벌어졌고 청년실업과 불안정 노동이 정치적 극단주의와 사회 양극화로 이어졌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한때 ‘산업수도’라 불렸던 울산의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현대자동차가 10년 만에 재개한 생산직 400명 모집에 12만명이 몰린 300대 1 경쟁률은 역설적 현상을 보여준다. 지방에 괜찮은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대기업 정규직만이 유일한 안전망으로 인식되고 있다. 조선업은 외국인 노동자 1만명을 들여와야 할 정도로 인력난에 시달리지만 청년들은 하청업체의 열악한 근무조건과 불안정한 고용을 피해 수도권으로 떠난다.
중소 부품업체들은 더욱 심각하다. 현대자동차나 조선 3사에 납품하는 소부장 업체들은 이자조차 제대로 못 내는 한계상태로 내몰렸다. 자동화 투자는 뒤처지고 청년들은 박봉을 이유로 기피하면서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미국의 거대 IT기업들을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이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가 아닌 지방에서 시작됐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은 워싱턴주의 지방도시에서, 구글과 애플은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출발했다. 심지어 엔비디아도 데니스라는 동네 햄버거집에서 창업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전해진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지역 대학과의 긴밀한 협력이다. 각 지역이 대학을 중심으로 산업과 정부가 협력하는 모델을 구축했고 벤처캐피털과 액셀러레이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창업가들의 도전을 뒷받침했다. 실패에 관대한 문화와 재도전 기회 제공은 기본이다. 특히 비싼 임대료와 생활비를 피해 지방으로 이주한 인재들이 오히려 새로운 창업 허브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됐다.
6세 아이가 “어느 나라로 갈까요” 묻지 않아도 될 날
이재명정부의 청년 스타트업 벤처정책이 특히 눈여겨볼 대목이다. 정부는 ‘AI 대전환 시대, 청년창업을 국가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비전을 내걸었다. 핵심은 한국적 현실에 맞는 적용이다. 미국처럼 실패를 용인하는 창업문화가 필요하지만 현재 한국은 모방형 스타트업이 많고 규제 장벽이 높다. 지역거점 대학을 중심으로 제조업 인프라와 연구개발을 결합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실행력과 지속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막대한 재정 지속성, 수도권 쏠림 극복, 성과의 공정한 분배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러나 방향성만큼은 분명하다. 청년이 도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7세 고시’ 같은 불안의 현상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7세 고시’의 해법은 사교육 규제에 있지 않다. 청년이 한국 안에서 기회를 발견할 수 있는 사회, 부모가 불안을 이유로 아이를 학원에 내몰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지역이 다시 살아 숨 쉬고 청년이 다시 도전할 수 있다면 6세 아이가 “어느 나라로 갈까요”라고 묻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김기수 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