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퇴진, 도쿄증시 4만4000 돌파…장기채권 금리 급등
차기 정권 야당협력 위해 대규모 경기대책 기대감 반영
자민당 총재선거 막 올라…고이즈미·다카이치 등 경합
이시바 시게루 총리 사임 발표와 함께 일본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자민당 총재 선거를 통해 신임 총리가 나오면 경기부양을 위한 경제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재정팽창 우려에 따른 장기 채권금리의 급등과 엔화 약세 흐름도 고개를 들고 있다.
9일 오전 도쿄증권거래소에서 닛케이지수는 개장과 함께 4만4074.35포인트까지 상승했다. 전날 종가(4만3643.81) 대비 430.54포인트(0.98%) 상승한 수준이다. 이는 장중 역대 최고치였던 지난달 19일(4만3876)을 넘어선다.
이날 도쿄증시 상승은 전날 미국 주식시장에서 금리인하 기대감 등으로 주가가 상승한 것 등이 영향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이 신문은 다만 최근 주가 급등은 이시바 총리의 사임에 따른 정치적 영향도 있다고 전했다. 리소나어셋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일본 주식의 상승은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와 차기 정권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며 “이시바 총리의 사임으로 차기 정권은 야당의 협력을 얻기 위해 대규모 경제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강하다”고 했다.
여기에 차기 정권의 성향에 따라 일본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늦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달 잭슨홀 회의에서 물가와 임금의 상승세가 비교적 선순환하고 있다면서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를 계승하겠다고 자처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이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되면서 금리인상이 늦춰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카이치 전 장관은 그동안 일관되게 저금리와 재정확장을 기본으로 하는 아베정권의 경제정책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전 장관이 이시바 총리를 누르고 1위를 하자 곧바로 외환과 주식시장이 요동치기도 했다. 결선투표에서 이시바 총리가 당선되면서 시장은 다시 진정됐지만, 다카이치 전 장관이 상징하는 아베노믹스 계승자 이미지가 그만큼 각인돼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8일 도쿄 증시에서는 개별 종목에서도 기준금리 인상 지연 가능성에 따라 은행주 등이 하락했다. 이에 반해 방산주는 급등했다. IHI는 5% 이상 상승했고, 미쓰비시중공업도 3% 이상 올랐다. 다카이치 전 장관이 당선되면 방위비를 빠르게 늘릴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풀이됐다.
유력주자인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장관의 지역구인 가나가와현을 기반으로 한 백화점 등도 큰폭으로 주가가 올랐다.
채권시장과 외환시장도 움직이고 있다.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8일 달러당 148엔대로 지난 주말 대비 1엔 이상 상승했다. 채권시장에서도 8일 일본 국채 30년물의 금리는 연 3.285%까지 올라 지난 주말 대비 0.055%p 상승했다. 차기 총리가 누가 되더라도 재정확장에 나서면서 국채발행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메이지야스다증권 관계자는 “국채발행 증가가 뒤따르는 안이한 재정확장정책은 채권시장의 붕괴로 연결될 수도 있다”며 “향후 경제대책 등 불확실성이 여전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이시다 총리가 자민당 총재에서 사임하면서 다음달 4일 신임 총재 선거가 유력하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총재 선거에는 다카이치 전 장관, 고이즈미 장관, 하야시 마사요시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츠 중의원 의원 등의 출마가 점쳐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당은 현재 지난해 중의원 선거와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국회 양원에서 동시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양원에서 동시 과반 미달은 1955년 자민당 창당 이후 처음이다. 일본 정가와 금융시장에서는 과반 의석에 미달하는 집권여당이 향후 야당이 요구하는 각종 경제정책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