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증거개시제도 도입…손해배상액 현실화 추진

2025-09-10 13:00:01 게재

범부처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방안’ 발표

전문가 현장조사·진술녹취·자료보전명령 제도

기술개발비용 손해 인정, 1인 분쟁조정부 신설

드디어 한국형 디스커버리(증거개시제도)가 도입된다. 기술유출 손해배상액 산정시 기술개발 비용을 피해액에 포함한다. 법정 외 진술녹취와 자료보전명령이 가능해진다. 중소기업 기술분쟁조정 제도에 1인 조정부를 신설한다.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한성숙)는 10일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특허청 경찰청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방안’ 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의 기본방향은 △피해기업이 불리하지 않은 소송 환경 △침해 당한 기업이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보상 △기술탈취를 막는 든든한 울타리 제공이다.

이번 대책은 그동안 중소벤처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내용들이 포함됐다. 기술탈취 근절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기술탈취 피해사실 입증지원 강화 =

정부는 중소기업의 기술탈취 피해사실 입증 지원을 강화한다. 이를 위해 한국형 증거개시 제도를 도입한다. 기술자료·특허·영업비밀 침해 관련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의 사실조사 제도를 마련한다. 법정 밖에서 진술녹취와 불리한 자료파기 등을 하지 못하도록 자료보전명령 제도도 도입한다.

법원이 소송에서 중기부 공정위 등 행정기관에 행정조사 자료를 제출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신속한 재판을 유도할 예정이다. 행정조사 관련 자료는 디지털 증거자료까지 확대하고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5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한다. 기술탈취 피해기업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익명으로도 제보할 수 있도록 한다. 중기부에 직권조사권을 부여하고 중기부 행정조사의 제재 수준을 시정명령이 가능하도록 개선한다.

해킹, 불법 취득한 영업비밀을 누설하는 재유출 행위 등 신종수법에 의한 기술유출도 영업비밀 침해행위 처벌 대상에 포함된다. 국가핵심기술 해외유출 처벌대상에 브로커행위·미신고수출 등을 포함해 확대한다. 벌금도 현행 최대 15억원에서 최대 65억원으로 상향한다.

손해배상액 현실화도 추진한다. 중소·스타트업이 투자유치·거래제안 등 거래 전 교섭단계에서는 손해액 입증이 곤란했다. 피해기업은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지출한 비용을 증빙하기 어려웠다.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지출된 비용 대비 손해배상액은 매주 적었다. 법원의 기술가치 산정기준이 미흡했던 탓이다.

특히 실제로 인정되는 손해액은 피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최대 5배까지 부과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투입 개발비용이 손해액으로 인정하도록 산정기준을 개선한다. 정부 연구개발비 정보를 토대로 피해기업 연구개발비 범위를 산출하는 방식이다. 피해기업이 청구한 연구개발비도 법원이 증거로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법원이 손해액 산정을 전문기관에 촉탁하도록 근거도 마련한다. 기술보증기금 중앙기술평가원을 전문센터로 확대해 손해액 산정의 전문성을 높인다.

◆소액사건의 조정부 직권 결정 = 기술탈취 예방책도 강화한다. 관계부처 협력으로 중소기업의 국가핵심기술에 대한 전주기 보호에 나선다. 영업비밀과 기술보호를 위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동화된 영업비밀 분류와 유출방지시스템을 구축한다.

중소벤처기업 핵심기술의 조기경보 점검체계를 확대한다. 기술보호 기반시설 투자가 어려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보호시스템 구축도 지원한다. 이와함께 기술탈취 근절 범부처 대응단을 신설하고 (가칭)‘중소기업 기술분쟁신문고’를 운영할 예정이다.

특허청과 경찰청의 기술경찰 전문 수사조직·인력을 확충해 첨단산업과 제조업 분야 중심으로 수사를 강화할 계획이다. 수사기관과 연계해 기술유출 수사의 패스트트랙을 운영한다.

기술분쟁 조정제도도 개선한다. 현재 3인 이상으로 구성하는 중소기업기술분쟁조정 제도에 1인 조정부를 신설한다. 당사자 간 합의가 명백하거나 5000만원 이하의 소액 사건의 경우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서다. 직권조정을 도입해 신청인 주장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는 소액 사건에서 조정부의 조정안을 이유 없이 거부한 경우 조정부 직권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대책이 실효성 있게 현장에 안착하도록 부처 간 협업을 통해 세밀하게 정책을 관리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동안 중소벤처기업들은 기술탈취 피해 입증이 어렵고 소송에서 승소해도 손해배상액이 낮아 피해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

최근 벤처기업 설문조사에서도 기술침해 소송 과정의 애로사항 중 ‘증거수집 곤란’이 73%를 차지했다. 지난해 중기부가 판결문 분석에서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이 인용한 금액은 평균 1억4000만원으로 피해기업이 청구한 평균 금액 8억원의 17.5% 수준에 불과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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