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미투자 5500억달러 ‘불평등 논란’

2025-09-10 13:00:01 게재

“돈만 내고, 운용과 수익은 미국몫” … 한국은 3500억달러 문서화 놓고 교착상태

“일본 정책금융기관 자금으로 미국 경제와 산업을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방식이다. 명백한 불평등 합의다.”(노무라종합연구소)

“일본의 연간 대미 투자액 대비 7~8배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현실적이지 않다. 여전히 구체적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향후 커다란 리스크다.”(게이오대학 교수)

노무라, 4가지 문제점 지적

미국과 일본이 지난 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관세협상과 관련한 대미투자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지난 7월 양국이 구두합의한 내용을 문서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해 15% 상호관세가 본격 시행된다는 의미에서 일본 내에서는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 임기인 2029년 1월까지 총액 5500억달러(약 80조엔) 규모를 투자하는 것에 비해 자국이 갖는 실익이 무엇이냐를 두고 부당한 협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이번 합의가 불평등하다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한국도 구두합의 내용을 조만간 문서화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쟁점이 제기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미일간 투자협정이 주목된다.

기우치 다카히데 노무라종합연구소 연구위원은 5일 ‘미일합의 투자에 관한 각서: 미국 우위의 불평등한 약정’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정담당 장관이 합의한 협정이 크게 4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첫째, 투자와 관련한 모든 결정권이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이다. 투자 분야는 반도체를 비롯해 △의약품 △중요 광물 △에너지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등 9개 분야가 거론되지만 최종 결정권은 트럼프 대통령이 갖고 있다.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투자처를 결정하고 이에 대한 추천을 상무장관이 의장인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규정은 모든 투자가 미국 주도로 이뤄지는 점을 분명히 한것”이라며 “일본은 투자위원회가 대통령에 추천하기 앞서 협의위원회에 관여할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둘째, 일본이 투자금액을 제공하지 않으면 미국 대통령은 언제라도 일본 제품에 대해 즉각 관세를 인상할 수 있도록 했다.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일본산 자동차를 비롯해 대부분 품목에 15% 관세를 부과하지만 언제라도 다시 세율을 올릴 수 있어 리스크가 온존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양측은 이번 문서의 성격을 행정상 합의각서로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명시했다.

셋째, 일본이 제공한 자금으로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일본 기업의 참여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투자시 협력업체나 공급처 선정 과정에서 일본기업을 우선한다고 했지만 미국기업의 참여도 열어놨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투자에 따른 이익의 배분에서 절대적으로 불공평하다는 점이다. 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의 하나다. 특히 투자사업을 통해 이익이 나오기도 전에 현금흐름을 기초로 미리 분배금을 지급할 수도 있는 점에 우려가 크다.

예컨대 미국이 관리하는 특수목적법인(SPC)으로 일본 정책금융기관이 대출 또는 보증한 자금이 들어가면 일정한 기간 현금흐름이 창출되고 거기서 나오는 이익을 양국이 50%씩 분배받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향후 대출금 상환이 완료된 이후 이익에 대해서는 미국이 90%를 갖도록 했다.

노무라는 보고서에서 “일본 정책금융기관이 미국 경제와 산업을 위해 자금을 제공하는 결과가 돼 커다란 문제”라며 “수익이 창출되고 배당이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현금흐름에 기초해 미리 배당을 지급함으로서 미국 정부의 재정수입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불투명한 자금 조달 방법

일본이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해서는 각서에 명기하지 않았다. 다만 초기 출자와 이어지는 대출 및 대출보증 등에 정책금융기관이 동원될 것으로 보인다. 아카자와 장관은 “일본국제협력은행(JBIC)과 일본무역보험(NEXI)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와 비슷한 성격의 정책금융기관이다.

다이이치생명 경제연구소는 7월 미일 구두합의 이후 트럼프 임기 3년 안에 5500억달러라는 거액의 조성과 관련 현실적으로 가능한 경로를 제시했다. 이 연구소는 당시 “일본의 연간 설비투자 총액(106조엔)과 맞먹는 엄청난 금액”이라며 “이를 모든 채권발행으로 조달하면 엄청난 금리상승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연구소는 이에 따라 기금 또는 특수목적법인(SPC)에 미일이 공동으로 출자금을 내고 여기에 일본 JICB와 민간은행이 공동으로 대출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출자금 규모는 올해 1월 러트닉 상무장관의 인터뷰 내용을 들어 미국이 90%, 일본이 10%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만 합의 각서에는 출자금의 규모와 양측의 부담 정도를 정하지 않았다.

대출은 JBIC와 NEXI가 직접하기도 하고 일본 민간은행 대출에 대해 보증을 서는 방식이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일본정부 관계자는 “대출은 프로젝트 수익을 상환 재원으로 삼는 ‘비소구형 대출(non-recourse loan)’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카무로 마사코 게이오대학 교수는 “트럼프 임기 안에 80조엔(5500억달러)을 투자한다는 것은 기존 일본의 연간 대미 투자액(약 3조엔) 대비 7~8배에 해당하는 돈으로 현실적이지 않다”며 “각서의 구체적인 내용이 불투명하고 투자의 핵심과 양국에 대한 경제적 영향이 분명하지 않아 향후 커다란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구마노 히데오 다이이치생명 경제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번 5500억달러 자금 조달이 거대한 엔화 매도 요인으로 될 수 있다”며 “외환시장에서 엔저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고 했다. 자금 제공을 전액 미국 달러화로 하기로 했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향후 3년간 80조엔의 엔화가 외환시장에서 5500억달러로 환전돼 미국으로 이전되는 셈이다. 이는 일본이 보유한 외환보유액의 절반에 해당하고 한국의 외환보유액보다 1500억달러나 많은 규모다.

한국도 자금조달 문제를 두고 미국과 최종 합의문서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9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협상이) 상당히 교착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3500억달러를 외환시장에서 어떻게 조달해 운영하느냐는 문제가 중요하고 시장에 미칠 충격에 미국이 도와줄 부분은 해답을 달라고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실장은 그러면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마스가 프로젝트도 제대로 시작되기 어렵다”며 “사업이행 주체는 대한민국 기업이기 때문에 수혜자는 우리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일본, 미국 농산품 80억달러 추가 구입

미국과 일본은 별도의 공동성명을 통해 관세율과 함께 일본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 확대 등을 담았다. 공동성명의 요지는 미국정부는 현재 25%인 자동차 관세율을 12.5%로 낮추고 기존 세율 2.5%를 더해 15%로 했다. 자동차가 일본산인지 여부에 대한 판정 규칙도 새롭게 만들기로 했다.

일본의 수입쌀 최소접근물량(76.7만톤) 가운데 미국쌀을 75%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미 전체 수입쌀에서 미국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45% 수준이어서 30%p 만큼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던 것을 미국으로 돌리면 된다는 것이 일본정부의 설명이다. 일본은 또 미국산 대두와 옥수수, 바이오에탄올 등 농산품을 연간 80억달러(약 11조원) 추가로 구매하기로 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미국산 LNG를 연간 70억달러 수준에서 안정적 장기적으로 추가 구입한다고 했다. 알래스카산 LNG도 연간 약 2000만톤 수준 개발하기로 했다. 일본 연간 수요의 30%에 해당한다.

미국산 무기수입도 수십억달러 규모 늘리기로 했다. 일본 방위성은 구매할 무기 후보로 중거리공대공미사일과 스텔스전투기 F35 등의 수입 확대를 들고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본 자동차업계는 이번 합의를 계기로 다양한 생존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자동차 부품회사 80% 이상이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가격인상을 요구했거나 할 예정이다. 예컨대 베어링 제조업체인 일본정공은 올해 2분기 관세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14억엔 감소했다. 하지만 10억엔을 부품가격 인상으로 보충했다.

도요타는 미국차 수입을 늘려야 하는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에서 생산한 일본차를 역수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도요타 아키오 회장은 지난 7월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차종에 대해 “역수입하는 방안에 대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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