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재건축단지에서 ‘상가’ 사라진다

2025-09-11 13:00:04 게재

강남권 중심 상가없는 재건축 확산

공실 우려 높아져 소유주들도 동의

신규 재건축 단지에서 상가가 사라지고 있다.

11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최근 공실 우려가 커지고 상가 소유자-조합 간 분쟁이 늘어나면서 재건축을 할 때 상가를 짓지 않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분양이 안되거나 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 복잡한 내부 갈등을 겪느니 아예 상가를 짓지 않고 대신 아파트 호수를 늘리는 쪽을 택한 것이다.

통합 재건축을 추진 중인 강남구 대치동 대치우성1차와 대치쌍용2차 조합은 상가 소유주 23명에게 아파트 입주권을 주기로 합의했다. 상가 소유주들도 공실 우려가 높은 상가 대신 아파트를 선호하면서 양측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조합은 상가 소유주 100% 찬성 의결을 받고 상가협의회와 협약서를 작성했고 총회에 안건을 상정해 전체 조합원 2/3 이상 동의를 얻어 가결했다.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상가를 짓지 않는 단지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상가 없는 재건축 추진안을 소유주들과 합의하고 서울시에 계획을 제출한 강남구 대치쌍용아파트 전경. 사진 강남구 제공

송파구 잠실우성4차도 신규 상가를 짓지 않고 아파트만 세우는 방향으로 재건축이 추진 중이다. 이곳 역시 상가 조합원들이 상가 보다 아파트 분양을 원하면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상가 소유주 가운데 현금 청산을 받는 조합원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에게 아파트 입주권이 주어진다.

정비업계에서는 향후 이처럼 상가 없는 재건축이 확산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분양 사례가 속출하면서 금싸라기 투자처로 꼽히던 상가 분양이 재건축 사업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과거 상가는 조합의 이익을 높이고 입주민들 분담금을 줄여주는 효자 상품이었다. 통상 아파트가 10억원이면 상가는 약 15억원 상당의 가격이 매겨졌다. 상가가 50개일 경우 250억원 차액이 발생하고 이는 조합원의 재건축 분담금 감소에 톡톡히 기여했다.

재건축 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도 상가 개수는 늘어났다. 재건축으로 기존 상가 숫자를 줄이려 하면 상가협의회가 크게 반발해 기존 상가 수를 유지하거나 되레 늘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아파트에 비해 투자금이 적고 안정적 임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도 투자자들 관심이 집중된 이유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 쇼핑이 일반화되면서 상가 선호 경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기존 온라인 쇼핑이 젊은층 중심이었다면 코로나19로 외출 자체가 어려워지자 중장년 나아가 노년층까지 대거 온라인 쇼핑 대열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배달 문화 확산도 이 같은 흐름을 부추겼다. 음식은 물론 식자재를 집앞까지 배달해주는 기업이 큰 인기를 끌었고 유명 쇼핑몰들도 앞다퉈 온라인 쇼핑 플랫폼을 만들어 당일 배송, 새벽 배송에 뛰어들면서 관련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진척이 더딘 재건축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1월 준주거지역의 상가 확보 의무 비율을 없앤 것도 상가 없는 재건축이 확산된 계기가 됐다고 진단한다. 기존에는 반드시 10% 규모의 상가를 확보해야 했다.

또 시는 지난 6월 상업지역의 상가 의무 확보 비율을 기존 20%에서 10%로 대폭 줄였다. 공실 우려가 컸던 상황에서 제도가 바뀌자 상가 없는 재건축을 결정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재건축에서 상가를 없애는 사례가 갈수록 확산될 것으로 전망했다. 제도 개선과 아울러 소비 패턴이 다시 과거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상가 분양으로 고수익을 올렸지만 이제 아파트단지가 아무리 커도 상가는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며 “가뜩이나 공사비 인상 등으로 분담금 부담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미분양 위험을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상가없는 재건축이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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