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설현장 산재·체불 주범 ‘불법 재하도급’, 근본적 처방은

2025-09-11 13:00:27 게재

이재명정부는 산업재해와 임금체불에 대한 근본적 해결에 진심이다. 대통령은 “기본적 인권과 상식 그리고 도리의 문제”임을 천명하고 고용노동부 장관은 “불완전한 행동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일갈한다. 그리고 산재와 체불의 주범이 건설현장의 ‘불법 재하도급’임을 제대로 짚었다. 이번엔 바로잡을 수도 있겠다.

‘불법 재하도급’ 폐해의 핵심은 ‘돈의 삭감’이다. 발주자가 엄격한 기준에 따라 작성한 설계금액 100원짜리가 불법 재하도급 단계마다 반복 삭감돼 50원만 남는다.

삭감된 돈에 맞추려니 억지로 비용을 줄여야 한다. 저가 자재를 쓰거나 누락시키고 고강도 장시간 노동으로 공사기간을 단축해야 하며 부당한 요구에도 순응하는 저임금 불법고용 노동자를 투입해야 한다. 내국인은 쫓겨나고 부실·붕괴·산재의 위험은 높아진다.

또한 돈이 부족하니 노무비를 유용하거나, 손해를 직감한 팀·반장이 잠적하거나, 압류 등으로 공사비가 묶이면 임금체불로 이어진다. ‘돈의 유용’과 ‘돈의 삭감’을 막아야 한다.

진단은 정확하지만 처방은 핵심을 비껴가

2일 발표한 범정부 ‘임금체불 근절 대책’은 문제의 원인을 “비용 절감 목적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 만연, 특히 건설업에서는 시공팀장 재하도급 등 불법하도급에 따른 중간착취로 임금체불이 발생”이라고 정확하게 진단했다. 하지만 구조적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임금 구분지급’ ‘발주자 직접지급’에 그쳤다.

필요한 대책이기는 하나 핵심을 놓쳤다. 그 정도로는 대통령과 장관의 약속을 지키기 어렵다. 산재·체불의 주범인 불법 재하도급을 근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금 삭감 방지’와 ‘임금 유용 방지’는 둘 다 산재와 체불을 막는 데 중요하다. 하지만 중요도와 파급력을 따진다면 단연 ‘임금삭감 방지’가 먼저다. 해법으로 제시된 ‘임금 구분지급, 발주자 직접지급’은 임금의 유용 또는 도산·폐업·압류에 따른 체불을 막는 데 기여하지만 문제의 핵심인 ‘불법하도급에 따른 중간착취’ 즉, ‘임금 삭감’을 막을 수는 없다.

감춰진 불법 재하도급을 거쳐 100원짜리가 50원으로 삭감되거나 브로커가 임금 중 일부의 ‘똥’을 떼 가더라도 이를 임금의 중간착취로 처벌하기 어렵다. 직종별 임금의 기준과 하한선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공공공사에서 ‘임금 구분지급, 발주자 직접지급’을 시행하고 있지만 산재와 체불 그리고 불법 재하도급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불법 재하도급이 만연된 이유가 뭘까? 상위 도급자에게 낮은 가격에 받더라도 ‘자신의 몫’을 떼고 하위 수급자에게 ‘더 낮은 가격’에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광주 학동 붕괴사고에서 보았듯이 ‘평당 28만원→10만원→4만원’식의 단가 삭감이 가능하다. 불법 재하도급을 근절하려면 ‘단가 후려치기’를 막아야 한다.

단가 삭감 막는 ‘적정임금제’ 제도화 시급

미국의 공공공사에 적용되는 프리베일링 웨이지 제도(prevailing wage, 적정임금)를 참조할 수 있다. 이것은 정부가 공표하는 직종별 임금의 하한선으로서 위반 시 3년간 공공공사 입찰을 제한한다. 미국에는 재하도급을 금지하는 규제가 없음에도 공공공사에서는 재하도급을 자제한다. 평당 28만원에 수주했는데 하도급을 줄 때 28만원을 모두 줘야 한다면 ‘자신의 몫’을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공사의 낙찰률이 90% 이상으로 높다. 최저가낙찰제이지만 임금 삭감이 불가능하므로 직접노무비(=임금×노무량)를 낮추기 위해서는 공법·소재·공정관리기법 등의 기술개발로 노무량을 줄여야 하는데 그 폭이 점차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수업체가 제값에 시공한다. 고임금 고숙련 내국인 고용 증가와 품질·안전·생산성 확보, 민간공사에 비해 일반 재해 50% 줄고 사망 재해 15% 감소, 임금체불 감소 등의 성과를 보였다.

우리도 미국 사례를 벤치마킹한 ‘적정임금제’를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그리고 경기도의 발주공사에서 시행 중이다. 정부가 공표하는 시중노임단가 이상의 임금과 별도의 주휴수당 등을 지급한다.

낙찰률 상승, 불법 재하도급 감소, 고임금 고숙련 내국인 고용 증가, 외국인 합법고용, 8시간 일급제 정착에 따른 노동강도 완화, 만족도 제고, 산재와 체불 감소 등이 확인됐다. 이 참에 적정임금제 도입을 담은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복기왕 의원)을 통과시키고 조례를 통한 지자체의 시행도 확대해야 한다. 100원짜리를 오롯이 100원으로 만드는 게 답이다.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