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환자 100만명 시대, 배상책임 누가지나

2025-09-12 13:00:03 게재

손해배상 사각지대 사회적 분담

일본 80개 지자체 보험제도 도입

구제제도 한국선 익산·천안 운영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24년 노인인구(65세 이상)는 995만명이고, 이중 추정치매환자수는 91만명(유병률 9.15%)에 달한다. 2026년에는 1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치매 전 단계에 해당하는 경도인지장애 인구는 400만명 가량된다. 전체 인지장애인구만 500만명이 넘어서고 있다. 연령이 늘어갈수록 치매 환자수는 늘어나는데 85세 이상이 27.11%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80~84세(22.92%)였다. 전체 치매환자중 중증과 중증도는 각각 2.8%, 29.5%로 나타났다.

치매는 돌출 행동으로 이어지는데 주변이나 이웃에 폭력을 행사하거나 재산상 손해를 입히기도 한다. 대부분 배우자나 가족 등이 민사 책임을 지는데, 초고령화시대에 노인과 치매환자가 급증하면서 사회가 이를 분담할 필요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보험연구원 이상우 수석연구원과 강윤지 연구원은 11일 ‘일본 치매 피해 지자체 보험과 시사점’ 보고서를 내고 “치매환자의 가해사고로부터 가족의 부담을 줄이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 민영보험을 통한 피해자 구제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지방자치단체 보험제도 운영을 위해 치매 관리 사업의 일환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치매노인이 늘면서 크고 작은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실종사건이나 치매노인을 상대로 한 노인학대 사건이 있다. 하지만 치매노인이 가해자인 사고도 적지 않다.

치매환자는 인지기능이 저하되고 충동조절 장애 증상을 보인다. 증상이 심한경우에는 가족이 간병을 포기하거나, 요양원 입소도 거부당한다. 이런 경우 수용할 수 있는 정신병원은 점차 줄고 있다.

치매노인이 요양보호사를 상대로 폭행을 하거나 운전을 하는 경우, 방화, 재물 손괴 등으로 이어진다. 과거 치매 의심 노인이 차량을 못으로 긁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자녀들이 재산을 처분해 합의한 적도 있다.

치매노인이 가해라는 점에서 사회문제화되지 않는 경우도 상당하다. 경미한 사건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배려하기 때문이다. 결국 치매환자의 가해사고 규모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민법 제750조는 불법행위로 가해자가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원인 제공자인 가해자가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가해자가 치매 등 심신상실자인 경우 감독의무자가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는데 집에서 치매환자를 돌보고 있다면 배우자와 자녀 등 부양가족이 감독의무자다.

치매환자를 가족이 돌보면서 갈등이 심각해지는데, 간병에 따른 경제적 여건과 정신적 고통을 겪곤 한다. 간병을 하기 위해 가족 중 한명이 실직하고, 소득은 줄어든다.

간병 우울증과 경제적 부담이 커져간다. 자녀가 아닌 배우자에 의한 간병은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진다. 존속 살인이나 가족동반 자살이 심심치 않게 언론에 등장하는 이유다. 여기에 치매 환자가 타인에게 경제적 피해를 입혀 그 배상책임까지 진다면 가정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도 우리와 유사한 심신미약자의 감독관리자 책임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2007년 일본 아이치현 오부시에서 ‘JR치매노인’ 사건이 발생했다. JR은 일본 철도를 말한다.

10여년간 치매를 앓고 있던 노인(당시 91시)이 심야에 집밖으로 나와 배회하다가 JR도카이역 구내 선로에 진입해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이 사고로 20여편의 열차가 운행을 중단했다. 철도회사는 직·간접적 손실을 85세인 배우자와 자녀 4명에게 청구했는데 그 비용이 720만엔에 달했다. 1심과 2심은 자녀들의 책임과 배상액에서 다른 판단을 했지만 사고 당시 잠들어있던 배우자 책임은 모두 인정했다.

2016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하급심을 뒤집었다. 치매 노인의 제3자 배상책임사고에 대해 감독의무자인 부양가족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숨진 노인의 배우자 역시 치매 진단을 받은 점을 고려해 ‘노노간병’에 해당한다고 봤다. 배우자를 감독의무자에서 제외할 수 있고, 동거하지 않는 자녀 역시 감독의무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재산 피해를 입은 철도회사는 피해를 보상받지 못하는 공백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법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등장한 게 보험이다.

유명 보험사인 미츠이스미토모해상은 피보험자 범위를 전 가족 구성원으로 확장하는 일상생활배상특약을 내놨고, 곧이어 동경해상은 치매 환자가 일으킨 사고로 인한 손실을 보장하는 특약을 출시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고베시다. 2019년 당시 고베시 인구는 152만명인데,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29%(42만명)에 달했다. 치매 노인이 급증하자 치매환자는 물론 시민 모두를 ‘사고구제제도’에 가입시켰다. 치매환자에게 피해를 입은 경우 보험금이 지급되는 구조다. 피해자가 다른 지역인 경우도 위로금이 보장된다.이후 일본의 지자체는 다양한 구제 제도 또는 보험을 통해 치매환자와 가족, 시민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80개 지자체가 치매피해보험에 가입하거나 구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도 익산과 천안 등이 초보적인 구제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한국은 2017년 치매국가책임제를 선언했지만 아직도 치매노인 돌봄 책임을 가족에 전가하고 있다.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가족 구성이 다양해지면서 부모 부양 및 간병을 포기하는 자녀가 늘고, ‘구하라법’과 같이 양육을 소홀히 한 부모의 부양을 거부할 수 있다. 여기에 황혼 이혼마저 늘고 있다.

연구팀은 “부양가족이 없거나 자력이 없는 경우 돌봄 부담 외에 피해보상을 위해 부양가족이 재산을 처분하는 등 가족 위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치매 피해 비자체 보험은 치매 돌봄 가족의 부담을 완화하고 시민을 보호하는 대표적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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