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대를 이은 ‘명장’ 고민철 HD현대중공업 기사

“핵융합구조물 제작에 3차원 측정기 적용해 뿌듯”

2025-09-12 13:00:01 게재

공무원 그만두고 현대중공업 입사

“명장 아버지 뒤를 잇고 싶었다”

HD현대가 우리나라 제조업 분야에서 처음으로 부자(父子) 명장을 배출해 화제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수여하는 ‘대한민국 명장’은 산업 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하고 동일직종에서 15년 이상 종사한 사람으로 △숙련기술의 보유정도가 높은 자 △신청 직종의 숙련기술 발전을 위한 성과가 우수한 자 △숙련기술자 지위 향상을 위한 성과가 우수한 자 △신청 직종의 산업화 및 현대화 실적이 우수한 자(공예분야) 등 네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사람이 후보로 신청할 수 있다.

지난 9일 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이 주최한 ‘2025 숙련기술인의 날’에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된 고민철(43) HD현대중공업 기사는 “한 업종에서 최선을 다한 명장들과 같은 명칭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담스럽다”며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고 기사는 금속재료 분야의 판금제관 직종 명장이다. 고 기사의 부친인 고윤열(67)씨도 2004년 제관직종 명장에 선정된 바 있다. 고윤열씨는 8년 전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울산과학대 교수로 뿌리산업을 가르치고 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생업에 뛰어든 그는 경남공고 산업체 특별학급을 졸업하고 현중 근무 중 방송통신대를 졸업했다.

고민철(왼쪽) HD현대중공업 기사는 부친인 고윤열(오른쪽)씨에 이어 9일 대한민국 명장에 올랐다. HD현대그룹은 국내 제조업 분야에서 첫 부자 명장을 배출했다. 사진 HD현대 제공

●어떤 일을 하나.

판금제관 일을 한다. 명장 심사 과정에서 자신만의 핵심기술을 시연하고 설명하는데 나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를 만들 때 3차원 측정기 ‘레이저 트래커’를 사용해 생산성과 정밀도를 높인 것을 강조했다.

●현장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

줄자 등으로 치수를 재는데 선박을 만드는 조선과 달리 핵융합실험로는 타원형 곡선이 많아 자로 측정하기 어려웠다. 3차원 측정기는 마지막 단계에서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는 검사용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실시간 치수를 알 수 있다. 이것을 제조 과정에 적용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대당 4억~5억원 하는 측정기 가격이 부담스러웠고,혼자 배워서 할 수도 없었다. 후배 동료들과 같이 하자고 해 자리잡는데 몇 년 걸렸지만 이후 공정 진행이 잘 되고 회사도 인정해 줘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는 기분에 뿌듯하다.

●소감은

올해 대한민국 명장은 11명이 됐다. 경력을 보니 27년부터 50년까지 였다. 나는 아직 20년이 안 됐다. 명장이 될 수 있는 15년 조건은 갖췄지만 송구스럽고 어깨도 무겁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위치가 되나 그런 생각도 든다.

●대를 이은 명장인데

2012년에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대학 졸업하고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업체 다니다가(2007~2008년) 결혼도 해야 하고, 정직원 모집은 안하고 해서 공무원 시험 공부해서 공군 기술직 군무원으로 일했지만 그만두고 입사했다.

인문계 출신이지만 명장인 아버지의 뒤를 잇고 싶었다. 아버지가 명장이 된 2004년은 군에서 제대해 복학할 때였는데 선배들을 보니 사무직으로 취직이 잘 안 됐다. 기술학원을 다니며 기술을 배우고 기능사부터 자격증도 땄다.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에 입교해서 조선기술도 하나씩 배웠다.

현중은 당시 신입을 경력직으로 뽑았는데 사내 기술교육원을수료하고 협력업체에서 최소 1년 이상 근무해야 가능했다. 판금 취부직렬인데 도면을 보고 조선구조물을 만드는 기량을 평가받은 후 면접을 봤다. 면접 세 번째 도전에서 합격했다.

●숙련노동자들을 점점 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젊은 나를 명장으로 뽑은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기술도 있고 젊으니까 열심히 일하면서 후배들 양성도 잘 해 보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명장은 50세 넘고 60세 넘어서 되는데, 대단한 일이지만 30~40년 열심히 해야 된다고 하면 너무 먼 목표가 된다. 그런데 10년 20년이면 된다고 하면 목표가 손에 잡힌다.

작년에 울산 명장이 됐는데,그 후 내 말의 힘이 달라지더라. 이제 대한민국 명장이 됐으니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형처럼 친근하게 다가가서 함께 해보자고 할 생각이다. 사내 기술교육원 역할도 중요하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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