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취임 100일,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2025-09-12 13:00:06 게재

지난 9월 8일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오찬회동. “내란세력과는 악수도 않겠다”던 정 대표도 “이재명정권 퇴진”을 부르짖던 장 대표도 이 대통령과 함께 손을 맞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앞서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가진 한미정상회담. 불과 3시간 전 ‘숙청’ ‘혁명’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판을 흔들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정작 정상회담에 들어서자 이 대통령더러 “위대한 지도자”라고 추켜세우며 친근감을 과시했다.

이 두 장면은 취임 100일을 맞은 이 대통령 국정운영의 상징같은 풍경들이다. 비록 정 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한 대야당 선전포고와 미국 이민당국의 조지아주 현대차-LG엔솔 공장 건설현장 300여명 근로자 단속으로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취임하자마자 밀어닥친 대미 관세협상과 뒤이은 한미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이 취임 후 맞닥뜨린 가장 큰 외교적 실험대였다. “우크라이나나 남아공 대통령처럼 면전에서 면박당하는 게 아니냐” 등등의 억측이 분분했지만 이 대통령은 보란 듯이 잘 헤쳐나왔다. 여전히 내란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국민의힘 대표와도 100일 사이에 두 번이나 만나며 통합 메시지를 발신했다.

이 대통령 현실주의적 행보가 만든 성적표

이 대통령의 취임 100일 성적표는 여론조사 지표에서도 두드러진다. 한국갤럽의 9월 2주 데일리오피니언(9월 9~11일 조사)에서 이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는 58%를 기록했다. 이는 취임 100일 무렵의 노무현(40%) 이명박(21%), 박근혜(53%), 윤석열(28%)보다 많이 높은 편이다.

전문가들 평가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성과 여부를 떠나 협치 노력은 칭찬할 만하다” “한미동맹 특히 한미 한중관계, 북한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준비된 느낌이 든다” 등등. 사실 실용주의라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경우가 많지만 적어도 이 대통령 경우에는 하나의 노선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는 평가다.

취임 100일의 이런 평가는 이 대통령 말마따나 진보보수를 넘어선 현실주의적 행보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기업인이건 노동계건 전 정권 인사건 일만 잘하면 쓴다는 실사구시적 면모를 과시했고, 산업재해 사망사고나 노란봉투법 등에 대해서는 단호하지만 노동계에 대해서도 노동의 유연성을 요구하는 등 진영에 갇히지 않는 사고를 보여줬다.

물론 이런 긍정평가는 온전히 이 대통령이 만든 게 아니다. 윤석열정권에 대한 기저효과가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일말의 반성도 보이지 않는 윤석열 김건희라는 존재 자체가 이 대통령을 더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취임 100일 긍정평가 이상으로 위험조짐들이 곳곳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여당 민주당과의 관계다. 정청래 대표로 상징되는 민주당의 강경노선은 정치적 계산을 떠나 이 대통령의 의도를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민생과 경제는 더 큰 불안요인이다. 서민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자영업자 다수는 이미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야심차게 내건 ‘코스피5000’ 목표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기에 트럼프 미 대통령의 변덕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팔 비틀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 대통령의 행보를 옥죌 가능성이 크다.

초심 잃으면 민심은 언제든 호랑이가 될 수 있어

이 대통령은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지난 100일은 ‘회복과 정상화를 위한 시간’”이었다며 “앞으로 남은 4년 9개월은 ‘도약과 성장의 시간’”이라고 자신했다. “지난 100일은 어려움도 많았지만 하나된 국민과 함께라면 어떤 난제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는 값진 시간”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제 얼마 후 허니문기간이 지나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향한 세간의 눈길도 조금 냉정해질 것이다. 국정수행 지지도도 생각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 이럴 때 역대 대통령은 ‘역사와의 대화’ ‘역사적 소명’ 운운하며 국민으로부터 더 멀어져 불통의 정치로 들어섰다. 이 대통령은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취임 100일을 맞은 이 대통령이 이것 하나만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지금의 성적표가 임기 전체를 관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초심을 잃으면 민심은 언제든 호랑이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문재인 전 대통령도 취임 100일 즈음 지지율이 78%나 됐지만 ‘정권을 윤석열이라는 괴물에게 넘겨준 대통령’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남봉우 편집인

남봉우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