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지지층에 휘둘리는 여당, 머나먼 ‘협치’
여야 원내대표 합의사항 연거푸 뒤집혀
‘민주당식 당원민주주의의 폐해’ 지적도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협상파트너인 제 1야당과의 합의를 두 번이나 파기했다. 그 중심엔 강성 지지층의 강력한 영향력이 있었다. 강성 지지층의 문자폭탄이 쏟아지면서 여야 지도부의 합의가 무력화된 것이다. 실낱같은 협치 가능성이 더 희박해지는 분위기다.
여당 내에서는 야당과 합의하려면 먼저 강성 지지층들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거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공천이나 후원금, 당내지도부 선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성 지지층의 영향력을 강화시킨 ‘민주당식 당원 민주주의’의 폐해라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김병기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사전 최고위원회의에 야당과 합의를 시도해 보겠다며 야당에 제안할 내용을 보고했고 별다른 반대의견이 없었다”면서 “이 자리에는 지도부와 함께 의원들 30명 정도가 같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지난 10일 오후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3대 특검의 ‘기한 30일 추가 확대 조항 삭제’ 등을 골자로 하는 합의안을 만들어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합의안에 반대한다는 의원들의 메시지가 연이어 SNS에 올라왔다. 여기엔 최고위원 등 김 원내대표로부터 협상 내용에 대해 설명을 들은 의원들도 포함돼 있었다. 정청래 당대표는 ‘재협상’을 요구했고 결국 김 원내대표는 정 대표에게 “사과하라”며 공개 반발했다. 당 대표측은 “구체적인 내용까지 보고된 건 아니었다”며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지도부나 의원들 내부의 불협화음 중심엔 ‘강성 지지층’이 자리잡고 있다. 수도권의 민주당 모 중진의원은 “최고위원 등 많은 의원들이 지방선거에 나가야 하니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면서 “강성 지지층의 입맛에 맞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선의 호남지역 민주당 모 의원은 “나도 그날 밤부터 엄청난 문자폭탄을 받았다. 이런 문자폭탄 받고 버티기는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강성 지지층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실상 김 원내대표의 설 자리가 크게 위축됐다. 이 대통령은 심지어 여야 원내대표 합의 결과를 사실상 ‘야합’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같은 방식의 국회 운영이 ‘협치’를 깨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또다른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강성 지지층들이 반대한다고 해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내용을 뒤집어 버리면 앞으로 어떻게 대야 관계를 만들 수 있겠나”라며 “대통령이 협치를 언급하면서 원내대표가 결단을 내린 것을 무력화시켰다”고 말했다.
이같은 여야 합의내용을 여당이 뒤집은 경로는 김 원내대표가 국회의장 주재로 야당 원내대표와 합의한 ‘국회 윤리특위 구성’을 파기한 상황과 같다. 22대 국회에서 멈춰 선 윤리특위 가동을 위해 윤리특위 구성 비율을 야당이 요구하는 ‘민주당 5명 대 국민의힘 5명’으로 양보해 합의를 끌어냈지만 곧바로 강성지지층의 강력한 공격이 쏟아졌다. 여야 동수로 구성된 윤리특위는 내란에 참여한 야당 의원 징계가 불가능하다는 게 핵심 이유였다.
결국 정청래 대표는 여야 합의를 무효화시켰다. 지금껏 윤리특위는 가동되지 못하고 있고 여야 의원들이 내놓은 징계안만 쌓여가고 있다.
두 차례의 여야 원내지도부 합의에 대한 민주당 내부의 비토는 김 원내대표의 대야 협상력이 떨어트렸고 정청래 대표에 대한 국민의힘의 반감을 키우면서 협치 시도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