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언제까지 해변가에서 놀기만 할건가

2025-09-15 13:00:00 게재

“한나라당 의원들은 해변가에 놀러 나온 사람들 같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에 비해 열정과 전략이 다 부족하다.”

2006년 3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친정인 한나라당 의원들을 겨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평생 건설현장에서 ‘불도저 인생’을 살았던 이 시장 눈에 야당 신세임에도 절박감 없이 항상 여유 넘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거슬렸던 게 분명하다. 이 시장은 야당 의원이라면 밤잠 줄여가며 정권탈환을 위한 필승전략을 짜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실의 한나라당 의원은 이 시장 기대와 너무 달랐다. 고위 공직자나 판검사 변호사 의사 교수 출신이 90%인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금배지는 성공한 자신의 인생을 빛내주는 또 하나의 장식에 불과했다. 금배지 달면 좋고 안 달아도 굶지 않으니 절박함이 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따위의 소명의식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다수가 ‘공천=당선’인 영남의원이다 보니 딱히 전략을 궁리할 필요가 없었다. 공천 받을 ‘줄’만 잘 잡으면 됐다. 조금만 위험을 감수하면 ‘수백억 차떼기’도 가능했으니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정치는 놓치기 싫은 화수분에 불과했다.

해변 기웃대는 유전자는 20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힘 의원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다. 12.3 계엄과 윤석열 탄핵은 국민의힘에게는 △2002년 차떼기 대선자금 수수 △2004년 노무현 탄핵 역풍 △2017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보다 더 큰 위기임이 분명했다. 윤석열을 배출하고 윤석열과 폭탄주 마시다가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은 국민의힘 의원들은 전국을 삼보일배로 돌며 국민 앞에 백배사죄해도 모자를 판이었다.

하지만 국민의힘 의원 107명 가운데 누구 하나 “내 탓”이라며 자책하는 이는 없었다. 안철수·윤희숙 혁신위원장이 특정 의원을 향해 책임을 물었지만 다들 “내가 뭔 잘못을 했냐”며 버텼다.

그리곤 “탄핵이 잘못됐다”고 우기는 반탄파(탄핵 반대) 대선후보와 당대표를 선출했다. 이젠 ‘기승전 이재명’만 외친다. “내 탓”은 슬쩍 뭉개고 앞으로는 “네 탓”으로 버틸 심산이다.

그들은 왜 2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걸까. 국민의힘 의원들은 여전히 기득권 출신만 넘쳐난다. 금배지는 생계가 아닌 폼일 뿐이다. 그들에게 소명의식 따윈 여전히 없다. 지금도 다수인 영남의원은 줄만 잘 서면 그만이니 국민에게 표를 애걸할 이유도 없다.

국민의힘 전직 의원은 “당에 판검사와 교수, 고위 공직자가 너무 많다. 앞으론 보좌관이나 시민단체 출신을 중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설 자리는 해변이 아닌 국민이 먹고사는 민생의 현장이어야 한다는 고민이다. 그래야 당이 산다는 얘기다.

엄경용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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