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하나
여당 “별도 법원 아닌 중앙지법에 설치, 문제 없어”
법원행정처 “사법 독립 침해·재판신뢰 훼손 우려”
법원장들, 사법개혁논의에 사법부 참여 보장 요구
최근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의 위헌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사법부가 ‘내란전담재판부’를 설치할지 관심을 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에 내란전담재판부를 설치하는 게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사법부 내에서는 독립 침해와 재판신뢰 훼손 등의 우려와 함께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12.3 내란 관련 기소되는 사건들이 늘어나 재판부의 부담이 늘고 있어 사법부의 선택이 주목된다.
15일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12.3 계엄사태를 다룰 ‘내란전담재판부’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에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금 우리가 하자는 건 별도 법원을 설치하는 것도 아니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에 내란전담부를 설치하자는 것인데 이게 무슨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내란 사건을 전담 심리하는 재판부 운영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답변한 데 대해 집권여당이 보조를 맞춘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당시 내란특별재판부와 관련해 “그게 무슨 위헌이냐”며 “모든 것은 국민에 달렸다. 대한민국에는 권력 서열이 분명히 있고 국회는 가장 직접적으로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사법부 내에서는 사법부 독립 침해와 재판신뢰 훼손 우려 등 내란특별재판부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 △사법권의 독립 침해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 저하 우려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 침해 우려를 들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국회에 제출했다.
헌법 101조 1항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건 배당 역시 법원의 전속적 권한으로 사법권 독립의 핵심 중 하나인데, 국회 등이 특별재판부 구성에 관여해 사건배당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자체로 사법권 독립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보장하고자 전산시스템을 통해 무작위로 사건을 배당하도록 한 만큼 특별재판부로 사건 배당의 무작위성을 훼손하면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깨뜨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심판할 판사를 기소 이후에 새로 임명하는 것은 헌법(27조 1항)상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게 법원행정처 입장이다.
즉 특정 사건을 어느 판사들로 구성된 어떤 재판부가 맡을지 정하는 것도 사법부의 권한이라는 것이다.
행정처는 또 헌법 110조상 군사재판을 관할하기 위한 특별법원으로서의 군사법원 외 특별법원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게 학계의 다수설로 “특정한 사건을 심판하기 위한 특별재판부 설치는 위헌적 제도라고 해석될 여지가 적지 않다”는 판단이다.
민주당이 내란특별재판부가 아닌 내란전담재판부를 설치하는 방안을 내놓으면서 사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을 끈다. 실제 서울중앙지법 형사부에 내란 관련 사건이 급증하고 있어 재판부의 부담도 증가하고 있다.
15일 현재 검찰과 특검팀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외환 사건 및 김건희 여사 의혹사건 관련으로 재판(기소)에 넘긴 사건은 모두 16건이다. 이들 사건 중 15건이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됐다.
한편 앞서 전국 법원장들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 방안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사법부 독립 보장과 사법부의 필수적 참여를 요구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과 전국 법원장들은 지난 12일 서초동 대법원 청사 대회의실에서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를 열고 여당의 사법개혁 추진과 관련해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며 “제도 개편 논의에 사법부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공식 입장을 냈다.
법원장들은 약 7시간 반 동안 ‘마라톤 회의’ 종료 뒤 보도자료를 내고 “사법제도 개편은 국민을 위한 사법부의 중대한 책무이자 시대적 과제이므로 국민과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 추진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폭넓은 논의와 숙의 및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입장을 함께 했다”고 밝혔다.
또 “최고법원 구성과 법관인사제도는 사법권 독립의 핵심 요소”라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하므로, 그 개선 논의에 사법부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법원장들은 민주당 사법개혁 특별위원회(특위)가 추석 전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추진하는 △대법관 증원 △대법관 추천방식 개선 △법관 평가제도 개선 △하급심 판결문 공개범위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등 5대 의제에 대해 각급 판사들의 의견을 공유하고 논의를 진행했다.
특히 대법관 증원과 관련해 대다수 판사는 ‘충분한 숙고 없이 진행된다’ ‘사실심 기능 약화가 우려된다’ ‘상고제도의 바람직한 개편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등 이유로 단기간 내 대폭 증원에 우려와 함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했다. 대법관 4명 정도의 소규모 증원이 적정하다거나, 그 전제로서 혹은 병행해 사실심에 대한 충분한 인적·물적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