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과거의 영광 넘어, K-철강 새로운 미래 연결할 때
직경 5.75㎜의 얇은 강선이 두 대륙을 연결하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튀르키예 다르다넬스 해협에는 2022년, 주탑 간 거리가 2023m에 달하는 세계 최장 현수교 ‘차나칼레 1915 대교’가 건설됐다. 주탑의 높이는 334m로 세계 최고 높이의 철골 구조물이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높이가 320m인 것을 고려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차나칼레대교의 주탑과 데크에 들어간 후판 9만2000톤, 케이블용 선재 4만4000톤 등 총 13만6000톤의 강재 전량을 우리 철강업계에서 공급했다. 수많은 강선이 모여 철줄 하나를 이루었고, 다시 이 철줄들을 모아 대교를 지탱하는 거대한 케이블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철강 기술력이 세계 최장 현수교에서 두 대륙을 연결하고 있다.
1973년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용광로를 통해 쇳물 생산이 시작됐다. 이후 철강산업은 반세기 동안 자동차·조선·건설 등 주력 산업에 핵심 소재를 공급하며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 결과 1인당 철강 소비량 세계 1위의 ‘철강 집약적’ 경제 구조를 갖춘 철강 강국으로 발돋움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철강산업이 직면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철강산업이 직면한 현실 녹록지 않아
신흥국의 생산능력 확대와 중국의 내수 침체 장기화로 글로벌 철강 공급 과잉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요국은 새로운 무역장벽을 구축하는 등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미국 EU 일본 등 주요 경쟁국은 자국 철강산업 보호와 탈탄소 설비투자 지원을 위한 선제적 산업정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 철강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 철강제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한데 이어 철강 파생제품까지 범위를 확대하고 있으며, 미 의회는 ‘철강산업 현대화법' 발의를 통해 정책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EU는 ‘철강·금속 산업 행동 계획’을 통해 친환경적이면서도 가격 경쟁력 있는 에너지 공급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또한 GX(Green Transformation) 추진전략을 바탕으로 탈탄소 R&D 및 설비투자를 지원하고, 수소환원제철 및 전기로 전환 등 철강산업의 연구개발 및 설비투자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 주요국이 자국 철강산업 육성을 위한 전폭적인 산업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우리 철강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지켜나가기 위해 체계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먼저, 수출 위축과 수입재 범람에 대응하는 단기적 위기 극복 지원이 시급하며, 동시에 저탄소 전환을 통한 미래 경쟁력 확보 노력도 추진되어야 한다.
특히, 수소환원제철과 같은 혁신 기술 개발 지원은 물론, 그린 수소 및 전력 인프라 구축에 대한 직접적이고 과감한 재정 지원, 그리고 국내 저탄소 철강재 수요 기반을 창출하는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책적 필요성에 부응하여 지난 8월 4일, 여야 106명의 국회의원이 뜻을 모아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 이른바 ‘K-스틸법’을 발의했다. 이는 철강산업의 위기와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정부 국회 철강업계 힘모아 선제적 대응을
지금 우리 철강산업이 직면한 도전은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도약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정부 국회 철강업계가 힘을 모아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간다면 지난 반세기의 영광을 넘어 지속가능한 미래를 여는 핵심 산업으로 다시 도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