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선 부채문제 해결 넘어 삶의 회복까지
화성시금융복지상담지원센터 ‘원팀 행정’으로 맞춤형 지원 … 1년만에 1644건 상담 성과
가정폭력을 피해 어린 아들과 어렵게 살고 있는 A씨. 그는 화성시 공무원들 사이에선 악성 민원인으로 통했다. 복잡하게 얽힌 채무 문제로 여러 기관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거절당하자 갖가지 민원을 제기했던 것. 하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시정을 적극 알리는 ‘홍보대사’가 됐다. 변화는 화성시금융복지상담지원센터(센터)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파산 신청조차 어려웠던 A씨의 상황을 파악한 센터는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센터는 파산 신청에 불리한 A씨의 보험·통장·출입국 내역 등을 소명하는 등 세심한 대응으로 단 4개월 만에 법원으로부터 개인파산 면책결정을 받아냈다. 아들과 함께 다시 새 삶을 설계해 나갈 수 있게 된 A씨는 시청 홈페이지에 “빚보다도 무서웠던 세상에 대한 불신을 걷어내고 화성시라는 든든한 내 편이 생겼다”는 감사글로 화답하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센터를 알리고 있다.
A씨는 센터의 채무조정 지원 사례 중 하나다. 센터가 설립된 것은 지난해 4월. 과도한 빚으로 고통 받는 시민의 실질적인 회복과 자립을 지원한다는 취지에서였다. 같은 해 6월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 센터는 불과 1년여 만에 1644건의 상담 실적을 올렸다.(2025년 6월 기준) 채무조정은 총 235건, 440억원 규모에 달한다.
◆악성 민원인을 홍보대사로 = 센터장을 포함한 직원이 3명에 불과한 센터가 이같은 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로는 적극적인 현장 상담과 홍보활동이 꼽힌다.
센터는 접근성이 낮은 어르신과 노숙인 등 취약계층을 상대로 ‘찾아가는 금융복지상담’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화성남부복지관, 노숙인재활시설, 종합사회복지관 등을 방문해 총 16명을 상담했고 이 가운데 7명은 채무조정으로, 2명은 채권협상으로 연계했다.
화성시민과 관내 기관 실무자를 대상으로 한 금융복지 교육도 진행한다. 이를 통해 금융복지의 필요성을 체감한 시민과 관계자들이 실제 상담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화성시와 센터는 또 경제적 위기 가구들이 상담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미디어보드와 IPTV를 통한 홍보, 유관기관 협력, 통리장단 회의, 현수막 등 다양한 채널을 활용한 홍보활동을 적극 펼치고 있다.
부채증명서 발급비용을 지원하는 것도 채무자들이 센터를 찾는 이유 중 하나다. 부채증명서는 개인회생이나 파산 신청시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서류다. 비용도 부담이지만 행정상 어려움도 적지 않다. 자칫 부채가 누락되면 채무조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센터는 비용뿐 아니라 전문 업체를 통해 행정적인 지원까지 하고 있다.
◆“시민 기댈 수 있는 최후 보루” = 현재 대부분의 광역지방자치단체에 금융복지센터가 있지만 기초지자체가 센터를 운영하는 곳은 3~4개에 불과하다. 화성시는 기초지자체이면서도 체계적인 운영으로 광역 이상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화성시와 관내·외 기관, 센터가 긴밀하게 협력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다른 광역 단위에서는 찾기 힘든 강점이다.
딸의 갑작스런 사건으로 가족의 삶이 흔들렸던 B씨의 사례는 ‘원팀 행정’의 효과를 잘 보여준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힘들어하는 딸을 돌보기 위해 B씨는 생업까지 포기해야 했고, 카드 돌려막기에 의존하다 빚이 순식간에 4100만원으로 불어났다. 이미 1억원이 넘는 채무로 개인회생 중이던 남편 빚까지 합치면 감당이 불가능했다. 월세는 계속 밀렸고, 빚 독촉 전화는 빗발쳤다.
B씨의 사연은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센터로 연계됐고, 센터는 B씨 가족이 단순한 채무 문제가 아닌 주거·고용·건강·심리·가족 문제가 얽힌 ‘초위기 가구’임을 즉시 파악했다. 이에 따라 센터는 신속채무조정 연계를 통해 당장의 빚 독촉을 막을 수 있게 돕고, 폐지 위기에 놓인 남편의 개인회생은 법원 납입유예를 통해 살려냈다. 동탄 행정복지센터와 경기도 무한돌봄센터에서는 긴급 생계비를 지원했다. 또 화성시사회복지협의회는 체납된 공과금을 해결하고, 어울림종합복지관은 월세를 지원해 주거안정을 도왔다. 이처럼 여러 기관의 전문성이 결합된 ‘종합 솔루션’ 덕분에 B씨 가족은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됐다.
B씨 가족처럼 채무조정을 넘어 복지서비스까지 연계된 것은 지난 1년여 간 66건에 이른다. 부채 문제 해결뿐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일상과 주거 안정을 유지하며 삶을 회복할 수 있게끔 안전망 역할을 한 것이다. 화성시는 이같은 성과를 토대로 병점 지역에 센터를 추가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송진섭 센터장은 “센터의 역할은 서류 너머에 있는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보고 복합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도 길을 찾아내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유관기관과 더 촘촘한 협력망을 구축해 시민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