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찰리 커크 사건과 세계 극우의 위협
2025년 9월, 미국 사회는 극우 청년 활동가 찰리 커크의 총격 사망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맞았다. 커크는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히 연결된 ‘마가(MAGA)’ 운동의 대표적 아이콘이었다. 그가 세운 ‘터닝포인트 USA’는 미국 대학가를 무대로 젊은 보수 세력을 조직해냈고, 인종주의·반이민·반여성·반LGBTQ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극우 이념을 전파했다. 커크의 죽음은 단순히 한 개인의 비극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내 정치적 폭력의 심화를 드러내는 동시에, 국제 극우 네트워크의 확산을 가속할 계기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사건이 촉발한 미국 정치의 양극화다. 의회조차 애도의 묵념을 두고 고성이 오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공화당 의원들은 민주당을 향해 책임을 떠넘겼고, 민주당 의원들은 총기 규제를 외쳤다. 상호 증오가 일상화된 정치문화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양극화한 미국 정치, 상호증오도 심화
정치학자들이 지적하듯 폭력적 언어는 실제 폭력의 ‘허용 구조’를 만든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총탄을 가까스로 피했던 일,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의 남편 피습, 미시간 주지사 납치 모의, 대법관 암살 미수, 그리고 1.6 의사당 습격 사건까지 일련의 사례는 미국에서 이미 그 구조가 현실이 되었음을 증명한다.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 민주당 대선후보가 잇달아 암살당했을 때, 당시 미국 지도자들은 복수보다 자제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반대다. 트럼프 대통령과 최측근 인사들은 사건 직후 범인이 누구인지 확인되기도 전에 ‘급진 좌파의 테러’라 규정하며 강경 보복을 다짐했다.
일론 머스크까지 “좌파는 살인의 당”이라고 말하며 증오를 부추겼다. 이는 정치 지도층이 폭력을 억제하기보다 오히려 선동의 도구로 삼는 퇴행을 보여준다. 이런 분위기라면 커크의 죽음은 오히려 극우 진영의 ‘순교 서사’로 소비되고, 정치적 증오와 분열을 강화하는 자산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실제로 오는 21일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의 대형 스타디움에서는 최대 7만명이 모이는 대규모 추모식이 예정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보수 진영의 거물들이 총집결하는 이 행사는 단순한 장례가 아닌 정치적 결속의 장으로 기획되고 있다. 이미 수백억원에 달하는 기부금이 모였고,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추모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극우 운동의 국제적 연계가 다시 한번 공고해지고 있다. 커크가 한국을 방문해 ‘한국판 마가 운동’을 촉구했던 사실을 떠올리면, 이 현상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극우 포퓰리즘의 파장은 국경을 넘어 확산되고 있다.
한편, 커크의 죽음을 둘러싼 반응은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관용 문제를 다시 시험대에 올렸다. 온라인에서 그의 죽음을 조롱한 이들은 최소 15명 이상이 해고·징계됐고, 정부 기관과 보수 인사들은 ‘무관용’ 방침을 천명했다. 심지어 방송 해설가가 ‘자업자득’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가 곧바로 해고되기도 했다. 극우 세력은 이를 ‘혐오 발언 척결’이라 정당화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이견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보복의 논리로 이용되고 있다. 반대로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커크에게 애도를 표한 사람마저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좌우를 막론한 ‘관용의 붕괴’가 미국 사회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흐름이 단지 미국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커크가 생전 강조했던 ‘국제 극우 네트워크’는 이미 한국과 유럽, 라틴아메리카까지 뻗어 있다.
경제 불평등, 이민 문제, 안보 불안은 극우 포퓰리즘의 비옥한 토양이다. 이념적 적대와 정치적 폭력을 통해 세를 확장하는 극우의 발호는 민주주의 자체를 무너뜨릴 잠재적 위협이다. 나치 독일의 역사가 증언하듯, 폭력과 증오가 제도권 정치와 결합할 때 파국은 순식간에 다가온다.
국제 극우 네트워크와 민주주의 위기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폭력적 수사와 정치적 선동을 경계하고,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폭력이 정당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사회적 불평등과 좌절을 극우가 파고들지 못하도록 민주주의적 대안을 강화해야 한다. 커크의 죽음이 불러온 파장은 세계적으로 극우의 세를 키우는 촉매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국제적 연대와 경계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 기로에 서 있다.
김상범 국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