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딛고 일어선 기능장애인의 ‘아름다운 도전’

2025-09-18 13:00:07 게재

[제42회 강원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제42회 강원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가 16일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개회식을 시작으로 전국 19일까지 17개 시·도 대표선수 465명이 참가해 40개 직종에서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겨룬다. 장애를 딛고 17개 시·도 선발전을 거쳐 전국대회에 아름다운 도전하는 선수들의 포부는 남다르다.

“기술은 나를 세상과 연결하는 다리”

이준영 | 워드프로세서·뇌병변장애

지난해에 이어 올해 대구장애인기능경기대회 워드프로세서 부문에서 금상을 거머쥔 이준영(31)씨는 뇌병변 중증장애인이다. 초등학교 시절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고모집에서 성장했다. 정규학교 대신 검정고시로 초·중·고를 거쳐 사이버대학(휴학)에 다니고 있다.

20살이 되자 본격적으로 재활치료를 시작했지만 병원의 획일적인 방식은 그에게 맞지 않아 찾은 곳이 경북 경산장애인복지관이었다. 처음 컴퓨터와 워드프로세서를 접한 그는 “처음엔 키보드 하나 치는 것도 버거웠지만 연습할수록 달라졌다”고 말했다. 컴퓨터활용능력시험, ITQ 등 각종 자격증과 대회에 도전하며 ‘기술’을 자신의 언어로 삼았다. 하지만 22살 자신을 엄마처럼 돌봐주던 고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집 밖을 나서지 않고 은둔생활을 이어갔다.

그를 다시 세상으로 이끈 건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이정일씨다. 중증장애인이면서도 컴퓨터프로그래밍 부문에 활발히 대회에 참가하고 배우기를 멈추지 않던 그는 직접 이준영씨의 집을 찾아와 야외활동을 권하고 응원했다. 그 만남은 그의 삶에 다시 한번 전환점이 됐다.

“하루는 거울을 봤는데 너무 말라 있었어요. ‘이 모습을 고모님이 보면 얼마나 속상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후 고모부(김영봉·82)와 일부러 밖에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이준영씨는 낮에는 장애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주차단속 업무를 하고 퇴근 후에는 복지관에서 재활운동과 컴퓨터 연습을 병행했다. 그는 “대구대회 금상 이후 주변 사람들이 제 장애가 아닌 기술에 주목하는 걸 느꼈다”며 “그 덕분에 당당해진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분명하다.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우승과 컴퓨터를 활용한 직업을 갖는 것.

“장애는 한계가 아니라 엔진”

신유석 | 웹마스터·청각장애

선천적 청각장애를 가진 신유석(34)씨는 이번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웹마스터 직종에서 금메달에 도전장을 냈다. 그는 “장애는 한계가 아니라 엔진”이라며 도전을 거듭해왔다. 중학교 3학년 때 오른쪽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지만 5~6년 뒤 사용을 중단한 뒤부터는 수어와 구화를 병행하며 세상과 소통해왔다. 대구대 회화과 2년 뒤 시각디자인으로 전과해 졸업하고 현장 경험을 쌓던 그는 2015년 대구직업능력개발원에 입학해 그래픽기술자격(GTQ) 1급과 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 자격을 취득하며 전문성을 다졌다.

2016년 울산장애인기능경기대회 시각디자인 직종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실력을 입증했다. 지난해에는 웹마스터 직종으로 바꾸고 울산 대회 금메달과 제41회 전국대회 장려상을 연달아 수상했다. 대회는 그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증명하는 무대였다. 현재 그는 수플러스 디자이너로 일하며 퇴근 후 두세 시간씩 PHP 프로그래밍과 서버 구축을 반복 학습해왔다.

신씨는 “지난해엔 준비 기간이 짧아 아쉬웠지만 이번에는 부족했던 코딩 역량을 보완해 꼭 정상에 오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신 씨는 개인의 성장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주 1회 이상 지역의 장애 청소년들을 찾아가 웹·앱 디자인 경험을 나누고 있다. “청각장애인이 최신 웹 기술을 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다. 나의 도전을 보고 누군가 용기를 낸다면 그 자체로 값진 일”이라고 말한다.

신씨는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 현업에서 쌓은 반응형·접근성 웹 디자인 노하우를 살려 장애인 친화적 웹·앱 서비스를 만드는 데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그는 “청각장애인은 취업하기가 너무 어렵다”며 “청각장애인으로 전화 받는 것은 잘 안되지만 취업의 문이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빵이 부풀 때마다 제 꿈도 부풀어요”

김예진 | 제과제빵·지적장애

“계량하고 반죽하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차분하고 즐거운 순간이에요. 빵이 부풀어 오를 때마다 제 꿈도 함께 부풀어요.”

지적장애를 가진 김예진(18)씨는 올해 충남장애인기능경기대회 제과제빵 부문에 도전해 값진 첫 무대를 마쳤다.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성인 참가자들 사이에서 당당히 실력을 펼친 그녀는 충남 대표로 선발돼 이번 전국대회에 최연소 출전자로 나선다.

김씨가 제과제빵의 매력에 빠진 건 2021년 한편의 유튜브 베이킹 영상이 계기였다. “밀가루가 마들렌으로 바뀌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건 마법이라고 생각했죠.”

호기심은 많지만 쉽게 싫증을 내던 그는 목회자인 아버지 덕분에 홈스쿨링으로 다양한 활동을 접하며 손기술을 익혔다. 그중에서도 베이킹만큼은 달랐다. 반복되는 공정 속에서 안정감을 느꼈고 조용하고 섬세한 과정이 자신의 리듬과 잘 맞았다.

김씨는 제과제빵을 전문으로 배우는 공주사대 부설 특수학교로 전학했고 학교의 권유로 기능경기대회 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성인들과 겨룬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도전해보자’는 결심이 서자 기숙사로 돌아와서도 밤늦게까지 케이크 사진을 찾아보고 베이킹 영상을 보며 자신을 다그쳤다. 그가 충남 대표가 발표되자 학교는 축제 분위기가 됐다. 이한우 교장이 기능대회 참가자들을 위해 레드카펫을 준비했고 전교생이 박수로 맞아줬다.

“열심히 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배운 그녀는 이제 더 큰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전국대회를 통해 자신의 꿈이 더 크게 부풀어 오르길 기대하며 김씨는 부드러운 반죽을 치대며 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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