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감수성’ 매개로 신촌 상권 살린다
서대문구, 시인 초청 ‘시멘트 프로젝트’
청년들 신촌 누비며 맛집 즐기고 시 창작
‘바랜 대학 후드티 / 대출이자만큼 무거운 하품 / 잔마다 언젠가가 넘친다…’ ‘귀를 대면 선연히 느껴지는 / 아스팔트 바닥을 들썩이는 가락…’ ‘표정을 보지 않아도 충분했다 / 당신 발목이 전부 말해주고 있었으니…’
서울 양천구 목동 주민 변유림(27)씨, 관악구 청룡동 주민 이현지(29)씨, 은평구 응암동 주민 전우성(29)씨가 제각각 ‘젊음의 거리’ 신촌에서 떠올린 시상(詩想)이다. 세 청년이 지나친 오래된 치킨집과 공연장, 독수리다방 인근이 시로 재탄생했다.
19일 서대문구에 따르면 구는 예술가들의 둥지이자 젊음과 자유의 상징이었던 신촌의 문화 감수성을 다시 일깨우는 작업에 한창이다. 지역이 보유한 자원을 토대로 동네만의 이야깃거리를 발굴해 키우고 이를 지속가능한 상권 생태계 조성으로 연계하는 '로컬브랜드 상권 강화' 일환이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해 올해 말까지 이어지는 사업이다.
신촌은 서대문구 핵심 상권 가운데 한곳이다. 특히 문학 음악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이름난 이들이 연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윤동주 시인과 최인호 소설가, 기형도 시인 등 문인들도 신촌 일대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독수리다방’과 ‘홍익문고’도 여전히 운영되면서 신촌의 문학적 감성을 이어가고 있다.
서대문구는 이같은 문화적 특성을 이어가면서 상권에 활력을 더하는 요소로 활용하기로 했다. 지난해 거리 공연과 춤으로 막을 올렸고 올해는 상반기 영상·사진 공모전에 이어 하반기에 ‘신촌랩소디 살롱’을 진행 중이다. 시 쓰는 청년들은 그 가운데 문예를 주제로 하는 ‘시멘트 프로젝트’ 참가자들이다. 구는 “틈을 메우는 건축 재료에서 착안해 ‘시(詩)’와 ‘멘트(Ment)’를 결합한 이름”이라며 “느슨해진 감성의 틈을 시와 대화로 채워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들은 신촌에서 글감을 수집하고 시를 쓰며 자신만의 문학적 감성을 완성한다. 지난 4일 창천동 신촌문화발전소에서 청년들에게 이름이 잘 알려진 박 준 작가와 함께 ‘영감이 문장이 되는 밤’을 보냈다. 작가는 글감과 영감을 수집하는 방법과 글쓰기에 담는 의미를 들려줬다.
청년들은 작가와 신촌에 대한 애정을 신청 이유로 꼽았다. 오는 11월 수필집을 출간한다는 변유림씨는 “지금은 마포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신촌은 대학생활을 오래 하면서 애정이 있는 곳”이라며 “박 준 작가를 좋아해 신청했는데 상권 살리기도 함께한다니 더 의미가 있다”고 동기를 설명했다. 일을 하면서 대학에서 시 강좌를 듣고 있는 이현지씨는 신춘문예 도전을 준비 중이다. 그는 “대학가로 이름난 신촌 곳곳을 탐방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취미로 시를 쓴다는 연극배우 전우성씨는 “평소 거리에서 많은 걸 얻는데 신촌 거리를 걸으며 지나가는 사람들과 사물을 관찰하고 싶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이날 신촌 상권 내 음식점에서 식사를 함께하며 서로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후 개별적으로 신촌 곳곳을 탐방하며 자신만의 글감을 모았다. 구는 이 기간 사용할 수 있는 2만원 상당 상품권을 제공했다. 그렇게 수집한 글감이 시가 됐다.
서대문구는 오는 23일 저녁 신촌 스타광장에서 작은 토크쇼를 열고 청년들 시를 공유할 예정이다. 신촌을 주제로 한 시를 엮은 작품집 출간도 준비 중이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은 “시와 노래가 어우러진 신촌랩소디를 통해 신촌이 다시금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상권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