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시작하는 탄소중립, 정책도 시민과 함께
노원구 온실가스 감축률 국가 전체보다 앞서, 이행 과정 점검 공유 … 히트펌프 등 건물 열에너지 소비 개선이 새 과제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수립을 위해 10월 14일까지 대대적인 국민 의견 수렴이 진행 중이다. 말뿐인 감축목표가 되지 않기 위해서 ‘탑 다운(Top-down, 하향식 의사결정)’ 방식이 아닌 ‘바텀 업(Bottom-up, 상향식 의사결정) 방식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 4월 전국 모든 기초지자체에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역 주도 상향식 의사결정 구조를 통해 탄소중립 실현을 현실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상향식 접근의 대표적 사례로 서울 노원구의 시민참여 과정을 들 수 있다. 노원구의 경우 온실가스 감축률이 국가 감축률보다 빠른 편이다. 노원구 온실가스 총 배출량은 2022년 기준 135만톤으로 감축 기준 연도인 2018년 대비 12.5%가 줄었다. 같은 기간 국가 전체 온실가스 감축률은 7.7%다.
18일 박신영 광운대학교 학생은 “뜻이 맞는 친구들과 팀을 꾸려 탄소중립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면서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노원구에서 하는 탄소중립 정책 공론화 과정에도 함께하게 됐다”며 “시민참여 정책 제안 공론장과 포럼 등에 참가해 청년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공론 과정에서 세대별 시각차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차이를 조율해 나갈 때 정책이 더욱 현실화하고 지속가능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환경·사회·투명경영 중요도가 높아지는 만큼 앞으로도 환경 관련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노원구청 관계자는 “구민들과 함께 수립한 기본계획이 담당 부서 책상에 꽂혀 있지 않도록 구민용 기본계획을 별도로 제작해 노원구 주요 거점 및 온라인, 문자로 배포하는 등 여러 방안을 강구 중”이라며 “계획만큼이나 이행 과정 점검이 중요한데, 기본계획 이행에 따른 노원구 온실가스 배출 목록 현황 등을 담은 탄소중립정보를 구민용으로 제작해 배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건물부문이 지자체 탄소중립의 핵심 = 지방자치단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특히 중요한 부분은 건물부문이다. 현실적으로 지자체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 발상만 달리하면 지역주민 복지와 기후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수단도 될 수 있다. 물론 2024년 국가 온실가스 잠정배출량 통계에 따르면 건물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 대비 2.8% 감소했다.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도시가스 소비가 줄어든 게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2024년 국가 온실가스 잠정배출량 통계는 가장 최근 수치다. 확정치는 2026년 하반기에 공개된다.
문제는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만 보면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에너지 효율성은 악화된다는 점이다. 건물부문의 경우 간접배출량을 산정하지 않는다. 발전부문에서 전기를 만들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건물부문에서도 계산하게 되면 통계상 중복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건물에서 전기를 많이 사용해도 온실가스 배출량만 보면 이 부분을 놓칠 수 있다. 잘못된 정책 방향 설정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건물부문의 경우 간접배출량 부분까지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토교통부의 건물에너지사용량통계(2024년)에 따르면 건물부문에서의 에너지 총사용량(전기와 열 포함)은 2023년 보다 3.9% 증가(약 3588만8000 → 3727만5000TOE(석유환산톤))해 발전수요 증가(전년 대비 1.3%↑)에 상당 부문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건물 단위 면적당 에너지 총사용량도 증가(117 → 119kWh/㎡)했다.
노원구의 경우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건물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75%에 달한다. 이 중 가정에서 배출하는 양은 45%로 공동주택의 에너지 효율 개선이 중요한 상황이다. 이에 노원구는 건물 분야 탄소중립을 위해 2034년까지 총 35만톤을 감축한다는 목표(2018년 대비 29.3%)를 세웠다.
이를 위해 △건물온실가스총량제 선도사업 △신축(재건축) 공동주택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실행 △공공 건축물 그린리모델링 △노원형 친환경보일러 교체 확대 △수요반응 시스템 구축 등을 강화해 시행 중이다. 노원구는 2024년 10월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등으로부터 탄소중립 선도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노원형 친환경보일러 교체 사업은 건물부문 열에너지 소비 개선에 주목한 정책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건물부문 에너지 관리에서 히트펌프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2년 세계 최종에너지 소비의 절반 가까이가 열에너지 소비에 해당하고 온실가스의 38%가 열에너지 소비로부터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세계 히트펌프 시장 및 정책 동향과 국내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유럽연합(EU) 열 전략 발표 이후 히트펌프를 핵심 수단으로 한 건물부문 열에너지 소비 탈탄소화가 중요 과제로 부각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히트펌프가 상대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보고서는 “근본적으로 난방과 같은 열 소비에 대한 탈탄소화가 국내 탄소중립 정책에서 아직 주목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공동주택이 일반화되어 있는 국내 주거 체계에서 건설사들이 자발적으로 도시가스 보일러를 히트펌프로 대체할 유인은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낮은 가스요금과 전기요금 누진제에 따른 높은 연료비 부담, 히트펌프의 품질 보증 및 국가표준(KS) 인증 기준의 미비 등도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주거복지와 연계한 에너지 효율 개선 =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원구는 건물부문 탄소중립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고 성과도 나고 있다. 실제 정책 성과 사례로 광운대역 물류 부지에서 개발 중인 ‘서울원 아이파크’를 들 수 있다. 이 단지는 주거·비주거 복합용지로 연면적 56만8708㎡, 약 3100세대 규모의 신축 공동주택이다. 주거용 건물이 ZEB 5등급 예비인증을 획득했다. 또한 이러한 친환경 기술을 다른 재건축 단지로 확산시키기 위한 추가 협의가 진행 중이다.
노원구 관계자는 “광운대역 물류 부지 개발사업 ZEB 인증을 통해 기대하는 온실가스 감축량은 약 5680톤으로 일반 주택 대비 에너지 효율이 더 우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건물 탄소중립은 주거복지 문제와도 맞물릴 수 있다. 녹색전환연구소의 ‘도넛으로 만드는 생태복지 도시-한국에서의 도넛도시 구현: 서울시 노원구와 충청남도 보령시 적용 사례를 중심으로’ 보고서에서는 “기존에는 복지 향상을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필요하다고 여겨졌지만, 이제는 생태적 한계 안에서 복지를 달성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며 “주거복지를 위해 공공지원으로 집수리를 하면서 단열 개선을 함께 진행하고, 태양광 설치를 덧붙이면 에너지 자립까지 이룰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이런 과정에서 지역의 집수리 업체들과 계약하면 지역 일자리 창출까지 연결되어 환경-경제-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원구는 노후한 주택의 안전관리 강화와 탄소중립을 연계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노원형 그린홈패키지 사업을 통해 2030년까지 약 1700톤의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시 새빛주택 지원사업 등 기존 정부 지원사업과 연계해 필요 주민이 지원 사업을 놓치지 않도록 대상 가구를 발굴하며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노원구는 2014년부터 서울시에서 유일하게 미니태양광 지원사업을 한 해도 쉬지 않고 추진해왔다. 설치비의 80%를 지원하는 이 사업을 통해 2025년 현재 1만5687가구에서 4717kW를 설치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노원형 발전차액지원제도로 소규모 발전사업자를 지원해 전력 4649MWh을 생산했다.
◆기후위기대응과 일상 속 탄소중립 실천 = 온실가스 감축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시스템도 구축했다. 전국 최초로 빗물받이 스마트 관리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노원구 빗물받이 전체 2만2000개에 위치 확인 시스템(GPS) 좌표를 설치해 빗물받이 막힘 현상이 발견되면 주민 누구나 신고해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노원구는 올해 7월 서울시 자치구 중 처음으로 탄소중립 전담부서인 ‘탄소중립국’도 신설했다. 기존 환경부서에서 탄소중립 업무를 분리해 3개 과 12개 팀 규모로 조직을 확대했다. 건물 수송 폐기물 등 온실가스 배출 순위에 따라 업무를 재편했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2050 탄소중립은 지방정부가 지켜야 할 중차대한 의무이자 약속”이라며 “노원구는 선언이 아닌 실천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중립을 구정 주요 정책으로 세우고 전담부서를 운영하는 등 지방정부의 책무를 다하고자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도시형 탄소중립 특화 전략이 담긴 정책을 수립하고 준비된 구민들과 함께 선도도시다운 탄소중립 모델을 실증하면서 대한민국 탄소중립의 녹색 엔진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히트펌프 = 외부 열원의 열에너지를 이용해 어떠한 열매체를 낮은 온도에서 높은 온도로 높이는 기술이다. 작동 원리에 따라 압축식 흡수식 흡착식 등으로 분류된다. 에너지효율에 대한 성능을 나타내는 성능계수(COP)가 얼마나 되느냐가 탈탄소화 기술로서 히트펌프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