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쿠폰 재원 놓고 서울 자치구 갈라졌다
국힘 주도 서울구청장협의회 정부 비판
민주당 구청장 불참…지방선거 판 짜기
민생소비쿠폰 재원 문제를 놓고 서울 자치구가 둘로 나뉘었다.
22일 서울시와 서울구청장협의회는 정부에 자치재정권 확대를 요구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그간 재정 자립도가 높다는 이유로 국비 보조를 덜 받았고 이로 인해 시는 물론 자치구 재정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 의식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날 공동선언에는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5곳만 동참했다. 민주당 구청장들이 불참 의사를 표했기 때문이다. 자치구 관계자는 “민주당 소속 구청장들도 민생소비쿠폰 재원의 정부 부담에 찬성하는 입장”이라면서도 “새정부가 역점 추진하는 사업에 오세훈 시장과 공동선언까지 하면서 비판에 나설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지방 재정권 확대를 표면에 걸었지만 이날 공동선언의 직접적 배경은 이재명정부가 추진 중인 민생소비쿠폰 재원 부담 문제다. 선언문 채택일을 소비쿠폰 2차 발행 첫날이 22일로 잡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또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오 시장 입장에선 동의하지 않는 사업에 참여하느라 빚까지 안게 됐으니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공동선언에 국민의힘 소속 구청장들만 참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쿠폰 재원, 정부 부담 찬성하지만 = 서울시는 최근 ‘빚’ 문제로 정부 공세의 고삐를 죄고있다. 새정부 출범과 함께 소비쿠폰 사업에 참여하면서 지방채를 발행해 6000억원의 추가 예산을 부담하게 됐다는 것이다. 오 시장은 이를 이유로 쿠폰 발행에 향후 동참하기 어렵다는 뜻도 밝혔다.
중앙정부가 소비쿠폰 재원 전부를 부담해야 한다는데는 민주당 구청장들도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날 공동선언에 민주당 구청장 전원이 불참하면서 묘한 기류가 형성됐다. 그간 당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중앙-지방 갈등 문제에서 비슷한 입장을 내왔던 여야 구청장들 사이에 일종의 대립전선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서울시 안팎에선 이날 공동선언 형태가 내년 지방선거의 전초전 성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소비쿠폰 발행재원에 대해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는 민주당 구청장들이 이재명정부 비판에 동참하기 어려운 상황을 파고 들어 전술적인 갈라치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새정부 출범 뒤 1년만에 치러지는 내년 지방선거는 여당에 유리한 구도라는 전망이 많다. 한 국민의힘 구청장은 “내년 선거는 탄핵 이후 쇄신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당 상황으로 봐서는 불리한 게 사실”이라며 “중도 소구력과 인지도를 갖춘 오 시장의 개인기에 의존해 공동전선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생 수 절반인데 교육청 전출금은 2배 = 소비쿠폰 재원과 별개로 서울시 국비 보조율 문제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사무와 구분이 어려운 지방사무, 인구구조 변화에 근거에 바뀐 사회상황을 반영하는 문제도 시급하다. 대표적인 게 정부 각 부처에서 추진한 각종 수당이다. 아동수당 출산지원 장려금 등은 실제 정부사업이지만 비용은 지자체와 정부가 분담한다.
연간 9000억원에 달하는 교육청 전출금도 조정이 필요하다. 2024년 기준 서울의 초·중·고 학생 수는 77만명으로 경기도(146만명)의 약 1/2이지만 교육청 전출비율은 서울시 10%, 경기도 5%로 뒤집어져 있다. 보통세의 일정비율을 교육청에 전출해야 한다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른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지방정부의 재정 자립 문제는 모든 역대 정부가 해당되는 문제”라며 “민주당 구청장들이 선뜻 나서기 힘든 소비쿠폰 문제를 들고 나옴으로써 지방재정 혁신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프레임을 씌을 수 있고 이를 통해 내년 지방선거 구도를 잡아 가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