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산재·임금체불 뿌리 뽑을 적정임금제
정부는 최근 임금체불을 2030년까지 절반 수준(1조원 이하)으로 줄이고 청산율을 9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산재 사망사고만인율을 지난해 기준 0.39에서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0.29까지 낮추겠다고 했다. 내놓은 정책은 역대 어느 정부의 그것보다 강도 높은 대책으로 평가된다.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는 임금체불과 산재의 원인을 ‘비용절감을 위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찾았다. 불법하도급은 광주 학동 붕괴사고처럼 ‘평당 28만원→10만원→4만원’으로 떨어지는 ‘단가 후려치기’를 초래한다.
상위 도급자는 낮은 금액으로 계약을 따낸 뒤 자신의 몫을 떼고 하위업체에 더 낮은 금액으로 재하도급을 준다. 이 과정에서 저가 자재, 인력축소, 고강도 장시간 노동,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 투입 등으로 이어져 부실·붕괴·산재위험은 높아진다. 발주자가 적정 공사비를 산정하더라도 다단계 불법하도급 과정에서 공사비와 산업안전보건비가 깎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정부가 임금체불 대책으로 내놓은 ‘임금 구분지급’ ‘발주자 직접지급’은 ‘임금 유용 방지’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임금 삭감’ 자체를 막지는 못한다. 이 방안들은 2011년 8월 ‘건설근로자 임금보호 강화방안’으로 제시돼 2012년 국가·지방계약공사에 의무 적용되고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여전히 산재·체불·불법하도급 문제가 반복되고 있어서다
산재·임금체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돈의 삭감’을 막아야 한다. 미국의 공공공사에 적용되는 ‘프리베일링 웨이지(prevailing wage, 적정임금제)’가 좋은 사례다. 정부가 공표하는 직종별 임금 하한선으로서 위반 시 3년간 공공공사 입찰을 제한한다.
미국에는 재하도급 금지 규정이 없다. 하지만 평당 수주한 금액을 하도급에 그대로 지급해야 하므로 ‘자신의 몫’을 떼기 어렵다. 돈의 삭감이 불가능하니 업체는 공법·소재·공정관리기법 등 기술개발로 노무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경쟁한다. 그 결과 우수업체가 제값에 시공하며 고임금·고숙련 내국인 고용이 늘어나고 품질·안전·생산성까지 높아졌다. 민간공사 대비 일반 재해 50%, 사망 재해 15% 감소, 임금체불 감소라는 성과도 보고됐다.
미국 사례를 벤치마킹해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그리고 경기도는 정부가 공표하는 시중노임단가 이상의 임금과 별도의 주휴수당을 지급하는 ‘적정임금제’를 모든 발주공사에 시행 중이다.
이재명정부 노동부 소관 국정과제에도 ‘적정임금제 제도화’가 포함돼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실행이다. 산재와 임금체불의 원흉인 ‘돈의 삭감’을 막고 불법하도급을 뿌리 뽑을 수 있는 적정임금제를 공공·지자체 모든 발주공사에 적용하고 민간공사로, 타 업종으로 확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