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시효 뒤 채무승인 “빚 갚겠다는 것 아냐”

2025-09-23 13:00:02 게재

1·2심, 시효이익 포기 해당 … 대법, 파기

“채무승인과 시효이익 포기는 구별돼야”

채무자가 채권의 소멸시효가 지난 이후 채무를 갚지 않은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더라도 시효 완성의 이익을 포기, 즉 빚을 갚겠다고 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채무자가 시효 완성 후 채무를 승인하더라도 시효완성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판례에 따른 것이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최근 건설업체 A사가 이 모씨를 상대로 낸 공사대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창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사는 2013년 8월 B씨에게서 공사대금 10억1200만원의 숙박시설 신축공사를 도급받아 그해 12월 공사를 완료했다. A사는 B씨로부터 9억6050만원을 받았는데, 나머지 5150만원은 받지 못했다. 이에 A사는 7년 가까이 지난 2019년 8월이 돼서야 B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A사에게 515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공사대금 채권의 소멸시효 기간인 3년이 훌쩍 지났지만 B씨가 미지급 사실을 시인하는 등 자신의 채무를 승인했고 여러 차례 A사에 사과를 전함으로써 시효이익을 포기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7월 전원합의체에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한 경우에는 시효완성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한 기존의 판례를 58년 만에 변경한 것을 근거로 2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채무승인과 시효이익 포기는 서로 구별돼야 하는 개념”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시효이익 포기는 단순히 채무에 관한 인식을 표시하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시효이익의 포기라는 법적 효과를 의욕하는 효과의사의 표시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채무승인과 뚜렷하게 구별된다”며 “이러한 효과의사는 채무자에게 불리한 법적 결과를 채무자의 자기결정에 따라 정당화하는 시효이익 포기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했다.

그러면서 “피고의 대리인이 이 사건 공사대금 미지급 사실을 인정해 채무를 승인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시효완성 사실을 알면서 그로 인한 법적인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다고 추정할 수 없다”고 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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