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 놓고 다퉈라
최근 사법개혁 방안 등을 놓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사법부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민을 위한 사법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생산적 논의는 실종된 듯하다. 민주당은 최근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사법개혁 방안을 마련했다. △대법관 증원(14→26명) △대법관 추천방식 개선 △법관 평가제도 개선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등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구성을 위한 법률안도 발의했다.
이에 대해 사법부는 독립성 침해를 우려하며 자신들의 의견도 반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까지 주장하며 사법부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국회 법사위는 30일 ‘조희대 대법원장 대선 개입 의혹 관련 긴급 현안 청문회’를 여당 주도로 개최하기로 했다.
사법서비스 질 개선이 사법개혁의 본질
사법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반대하는 국민은 없을 듯하다. 문제는 방향이다. 사법개혁은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쪽이어야 한다. 말하자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헌법 27조 3항) 등을 확장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조 대법원장 청문회나 사퇴 요구, 내란 전담재판부 구성 등의 논의는 본질을 벗어나 있다. 물론 사법부가 이런 상황을 자초한 데 대해서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대법원은 21대 대선을 한 달 앞둔 5월 1일 이재명 대통령(당시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이례적으로 단기간에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대선 개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 전에 없던 계산 방식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취소한 지귀연 부장판사도 사법부 불신을 초래하는데 한몫 거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개혁이 이 대통령 관련 사건 판결에 대한 보복이어서는 안 된다. ‘사법개혁의 정치화’는 오히려 개혁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또 지속성도 보장받기 어렵다. 민주당은 지금 삼권분립 훼손과 사법부 독립 침해를 우려하는 세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법부도 그냥 ‘숙의와 공론화’를 외치기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사법개혁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 사실 논란이 되고 있는 대법관 증원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사법부 내에서도 상고제도 개선 방안과 함께 대법관 4명 증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한 바 있다. 대법관 1명이 연평균 3000건 이상 처리하는 비정상적인 현실에서 대법관을 26명으로 늘리겠다면 오히려 사법부가 반겨야 할 상황이다.
물론 예산이나 인력, 장소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법관 증원이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거나 재판의 독립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헌법상 권리를 보장하는데 도움이 되면 됐지 방해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란 전담재판부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사법부가 내란 전담재판부의 위헌성만 강조할 게 아니라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집중적으로 재판을 진행하는 집중심리 등 먼저 방안을 마련했어야 했다. 이미 3대 특별검사(내란·김건희·순직해병) 사건의 급증이 예측된 상황이었다. 그나마 서울중앙지법이 내란 재판을 담당하는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에 법관 1명을 추가 배치하고 형사합의부를 추가 증설하기 위해 법관 증원을 건의하기로 한 것, 그리고 서울고법이 3대 특검 사건 항소심 땐 집중심리재판부 운영을 고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건의하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국민 위한 사법제도 놓고 생산적 토론을
이제는 여당도 사법부도 국민 위한 사법제도가 무엇인지를 놓고 생산적인 토론에 나서야 할 때다. 정부와 여당이 원한다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임명된 대법원장과 법관을 교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교체한다고 사법개혁이 완성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이 좋은 예다. 탄핵심판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성향의 헌법재판관 때문에 탄핵이 기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 성향을 떠나 재판관 8명 모두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이는 지금 여당이 다시 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내란죄를 담당하는 재판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여당이 사법부를 옥죄든 옥죄지 않든, 보수성향이나 진보성향에 관계없이 법관은 헌법에 규정된 것처럼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할 것으로 믿는다.
이선우 기획특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