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에르도안, 유엔총회서 미국식 일방주의 비판
“주권은 타협 대상 아냐”
“가자 전쟁은 집단학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제 80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각기 다른 주제를 통해 사실상 미국식 일방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 전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쿠데타 모의 사건 재판에 개입하려는 미국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룰라 대통령은 “전 세계적으로 반민주 세력이 제도를 억압하고 자유를 억누르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브라질은 야심 찬 독재자 지망생과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에 단호한 메시지를 보냈다”며 “민주주의와 주권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브라질 대법원은 쿠데타 모의·무장범죄단체 조직·중상해·문화재 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게 27년 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마녀사냥”으로 규정하고 브라질 제품에 50% 관세를 부과하고 관련 대법관을 상대로 광범위한 제재를 시행해 내정 간섭 논란을 일으켰다. 룰라는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조치를 정당화할 수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정상들 연설 순서상 트럼프 미 대통령 바로 전에 단상에 오른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 “우리 권력기관과 경제에 대한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조치를 정당화할 수 없다”며 “과거의 헤게모니를 그리워하는 극우 세력의 지원을 받는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공격은 용납될 수 없다”고 힐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사태를 거론하며 미국의 중동정책을 겨냥했다. 그는 “가자지구에는 전쟁이 없다. 이는 10월 7일 사건을 빌미로 자행된 집단학살일 뿐”이라고 밝혔다. 에르도안은 “가자지구 한 편에는 최첨단 살상무기를 휘두르는 정규군이 있고 다른 편에는 무고한 민간인, 무고한 아이들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는 테러와의 싸움이 아니다”라며 “가자지구가 하마스라는 핑계로 파괴되는 와중에 하마스가 집권하지 않은 (요르단강) 서안은 단계적으로 점령되고 있고 민간인들이 처형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가자지구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을 직접 들어 보이며 “지난 23개월간 인류 앞에 부끄러운 장면이 매일 반복됐다. 어떤 양심이 침묵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이스라엘 정부는 팽창주의에 집착해 역내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며 휴전과 국제사회의 연대를 촉구했다. 이는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온 미국 기조와 대립하는 발언이었다.
이번 유엔총회에서 두 정상은 사안은 다르지만 한 목소리로 미국의 일방주의적 행태를 비판했다. 룰라는 민주주의와 주권 수호를, 에르도안은 팔레스타인 인권과 휴전을 강조하며 각각 미국의 내정 간섭과 이스라엘 지지 노선에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