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북·중·러 3자 정상회담 불발의 정치학

2025-09-25 13:00:20 게재

2025년 9월 3일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80주년 행사는 역사 재구성과 국제정치게임의 교차점에서 대안적 국제질서 구상을 웅변하는 무대였다. 이에 앞서 시진핑 주석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국제질서 구축을 위한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GGI)’ 비전을 제안했다. 본질은 군사와 역사, 글로벌 사우스를 묶어 반(反)서방 결속을 강화하는 국제 여론전이다.

행사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나란히 참석해 북·중·러의 공동 전선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중-러, 북-러, 북-중 양자회담이 각각 열렸지만 정작 관심의 초점인 3자 정상회담(trilateral summit)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외교 일정상의 문제가 아니라 세 나라 협력의 성격과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북·중·러 협력의 중심 국가인 중국은 ‘삼각연대’ 고착화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미·유럽연합(EU)과의 관계 악화 및 경제 제재 위험을 키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텐안먼 망루에 동반 입장함으로써 상징적 결속과 ‘반서방 연대’ 이미지를 각인하는 효과를 충분히 얻은 만큼 추가적인 정치적 부담을 질 필요는 없었다. 중국 입장에서는 글로벌사우스 포섭 및 국제 중재자 이미지를 관리하는 다층적 전략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이 국익에 부합된다.

북·중·러 3각공조의 구조적 제약

시진핑 지도부는 경제회복, 대만해협 관리, 미중 갈등 조정 등 복잡한 과제를 안고 있어 전면적 진영 대결을 추진할 여력이 없다. 또한 3각연대 고착화는 국제 중재자·균형자 역할을 추구하는 중국의 글로벌사우스 포섭전략과도 충돌한다. 그래서 전승절 행사에 푸틴과 김정은을 나란히 세우는 상징을 연출했지만 공식 3자회담은 배제한 것이다.

중국은 북·중·러 3자관계의 주도자이자 조정자의 위치를 지키면서 전략적 모호성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중·러는 각각의 양자관계에 뚜렷한 제약과 균열 요인이 존재한다. 중·러는 전략적으로 밀착했지만 ‘공동의 적’(미국) 때문에 형성된 편의적 성격이 강하고, 역사적으로 국경분쟁과 불평등조약의 영토문제, 영향력 경쟁 등 잠재적 갈등요인이 상존한다.

북·중은 ‘혈맹’이라는 수사와 달리 상호불신이 깊다. ‘전략적 공생 관계’로 상호 필요성 때문에 밀착하는 형태다. 북한은 과도한 중국 의존이 가져올 주체성 상실을 우려하고, 중국은 북한을 전략적 완충지로만 활용하며 한반도 현상유지를 지향한다.

그리고 북·러 협력은 최근 급조된 성격이 강하며 실질 교환도 제한적이다. 북한으로서는 러시아에 무기와 병력을 전폭적으로 지원했지만 턱없이 미흡한 러시아의 보상에 불만이 클 것이다. 3자가 서로 동상이몽(同床異夢)인 상황에서 3자회담 성사를 위한 사전 의제조율이나 정치적 부담 이슈에 대한 합의는 애당초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3자 정상회담 불발은 삼각 공조의 한계와 중국의 전략적 셈법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북·중·러 3자 관계는 전략적 상호신뢰가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서로 체제 이념 경제기반이 다르기 때문에 구조적인 신뢰 형성이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삼각 공조는 결국 제도화되지 못한 느슨한 연대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설사 신냉전 구도로 가더라도 북·중·러는 삼각 동맹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북·중·러 3자협력이 공동체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국제정치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신현실주의 관점에서 국가는 자국의 안보와 생존을 최우선시하기 때문에 상호불신과 이해 불균형이 3자협력의 한계를 규정한다.

또한 균형과 편승의 논리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에 편승해 중국 의존을 줄이려 하고, 러시아는 북한을 통해 군비를 보완하며, 중국은 두 나라를 완전히 품지 않고 균형자로 남으려 한다. 전략적 이해관계의 불균형이 삼각협력의 공식화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투철한 실용외교로 전략공간 살펴야

따라서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북·중·러 3자가 ‘제도화’는 피하되, 양자관계의 교차 프레임에서 에너지 식량 무기거래 제재회피 군사정보 교환 등의 기능적·거래적 협력을 확대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3국공조는 ‘공통의 적에 맞서는 전술적 연대’ 차원을 넘기 어려우며 가치와 이념 연대가 아니기 때문에 쉽게 균열될 수 있다.

향후에도 이 같은 구조적 한계 때문에 3국 공조는 제도화 하지 못한 편의적 연대로 기능하게 될 전망이다. 우리로서는 배타적인 미-중 경쟁의 파고 속에서도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면서 국가 생존의 투철한 실용외교 전략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신봉섭 전 중국 심양주재 총영사 국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