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민주당 폭주’ 비상구가 안 보인다
요즘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을 보면 아슬아슬한 느낌이다. 문재인정권 당시 여당 민주당의 폭주가 똑같이 재연되고 있는 듯해서다.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는 지도부, ‘내란척결’을 전가의 보도인 양 휘두르는 행태, 야당에 대한 관용과 자제의 실종, 자신만 잘났다고 여기는 오만함까지 쏙 빼닮았다. 그렇게 하다가 정권까지 빼앗기고도 어떻게 똑같은 정치행태를 되풀이할 수 있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특히 민주당이 주도하는 국회 법사위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연일 막말과 고성, 일방통행의 신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추미애 법사위원장더러 “보수의 참어머니”라며 이죽대는 세간의 조롱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법사위가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를 열기로 의결한 데 이어 탄핵까지 추진하고 나섰다. 정청래 대표는 “대통령도 갈아치우는데 대법원장이 뭐라고”라며 한술 더 떴다. 사법부 독립 같은 건 상관없다는 태도다.
앞서 검찰개혁을 둘러싼 논의도 그랬다. 수사를 담당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어디에 두느냐를 놓고 좀더 깊은 논의가 필요할 듯 했지만 결론은 강성 지도부 뜻대로였다. 제1야당에 대한 태도는 더 심하다. 여당 대표는 제1야당 대표와 아예 악수도 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떠벌린다. 그야말로 ‘몰상식의 정치’가 뉴노멀이 된 듯하다.
‘더 강하게 못 해’ 정권 잃었다는 강경파들의 오판
그런데 당내 강경파들은 그 이유에 대해 ‘문재인정부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모양이다. 문재인정권 내내 적폐청산에 매달렸다가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그들에게 정권을 내줬으니 이번에는 더 강하게 해서 더 빨리 성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민주당의 ‘더 강하게, 더 빨리’는 과연 올바른 노선인가. ‘천만에요’다. 우선 상황인식부터 틀렸다. 물론 민주당 강경파 말마따나 문재인정권의 적폐청산이 장기화되면서 개혁피로감을 높인 것은 사실이다. 적폐청산은 짧게 좁게 끝내는 게 맞았다. 하지만 문재인정권의 실패는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촛불시민의 절대적 지지가 실망으로 바뀐 진짜 이유는 딴 데 있었다. 바로 민주당과 정권 핵심들의 ‘오만의 리더십’이 문제였다. 그들은 자신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자신들의 모든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여겼다. 이른바 ‘도덕적 면허효과(moral licensing effect)’다. ‘우리는 민주세력이고 너희는 적폐세력’이라는 이분법이 문재인정권 민주당의 5년을 관통했다.
그러나 주권자들은 민주당의 핵심 또한 ‘완장권력’에 심취한 또 다른 기득권이라는 것을 꿰뚫고 있었다. 자신들만 몰랐을 뿐이다. 여기에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정책 등 잇단 정책실패도 정권에 대한 실망감을 덧보탰을 것이다.
문제는 요즘 민주당의 폭주가 문재인정권 때보다 더 위험해 보인다는 점이다. 지금은 아예 내부의 다른 목소리조차 듣기 어렵다. 사석에서 당의 강경일변도 흐름에 우려를 표하던 의원들도 정작 공개석상에서는 입을 닫는다. 검찰개혁 관련한 의원총회 때도 다른 의견을 입에 올린 의원이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선무당 같은 지도부와 말을 해야 할 때 입을 닫는 비겁한 다선중진, 강성 지지층의 돌격대 역할을 하는 초선들 조합의 정당이라면 앞날은 뻔하다. ‘집단사고(groupthink)’는 몰락의 지름길일 뿐이다. 윤석열정권과 당시 여당 국민의힘이 딱 그랬다. 윤 전 대통령의 폭주에 입도 뻥긋 못하다가 끝내 함께 무덤을 파는 신세가 됐다.
5년 만에 정권 내 줄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지
민주당이 이처럼 폭주하는 데는 내년 지방선거에 질 일이 없다는 판단도 곁들여져 있는 듯하다. 지금 목청을 높이는 중진의원 대부분은 지방선거에 눈독 들이는 이들이라고 한다. 강성 지지층에 어필해 후보만 되면 당선이 보장된다며 ‘더 강하기’ 경쟁 중이란다. 여느 유권자는 안중에 없는 ‘오만병’이 도진 것이다.
그러면 민주당의 지방선거 승리는 정말 따놓은 당상인가. 내란사태에 대한 반성은커녕 오히려 도로윤석열당 아스팔트극우당으로 역주행하고 있는 국민의힘을 보면 그 판단이 딱히 틀린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다. 더구나 지금 시대 민심의 변화는 생각의 속도만큼이나 빠르다. 아직 장담하기 이르다는 얘기다.
설사 내년 지방선거에서 어떻게 승리한다고 해도 지금 같은 모습이라면 총선은 빨간불이다. 대선은 더 위험하다. 또 다시 5년 만에 그토록 경멸하던 내란세력에게 정권을 헌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은가. 국민의힘의 오늘이 민주당의 내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계심을 놓치는 순간 악몽은 현실이 될 수 있다.
남봉우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