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후예를 찾아서 | ‘K-조선 설계자’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

"인도도 한국에 손짓…‘마스가’ 너머 더 큰 세계시장 봐야"

2025-09-26 13:00:11 게재

대통령 직속 강력한 해사산업 컨트롤타워 절실

건강·시간되면 K-조선 세계에 알리는 일 하고파

“나에 대한 이야기보다 우리나라를 위해서는 해사산업에 대한 강력한 콘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해주면 좋겠다.”

신동식(93) 한국해사기술 회장은 25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목은관 3층 사무실에서 1시간 30분의 인터뷰가 끝나면서 기자에게 당부했다. 목은관은 고려말 충신 목은 이색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옆에 있다.

그는 지난 10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도 “대통령 직속의 강력한 해사산업 콘트롤타워를 만들어 세계 해양패권을 목표로 하는 K-조선의 길잡이가 돼주시길 건의드린다”고 이 대통령에게 호소했다.

◆미국 백악관과 소통하는 해사산업 지휘부 필요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 때부터 한국에 조선산업 협력을 요청하고,한미 통상협상에서도 미국조선산업 부흥을 위한 1500억달러 규모의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한·미 양국이 합의하면서 한국조선산업에 대한 세계적 관심도 다시 증폭되고 있다.

정부도 신 회장의 경륜을 경청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7월 31일 서울 총리공관에서 열린 ‘제2차 K-토론나라:신동식과의 미래대화’에서 조선업 성장 전략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도 신 회장은 “친환경, 디지털, 자율운항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 대한 투자와 관련 연구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며 “대통령 직속의 강력한 콘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1932년생인 신 회장은 한국전쟁 시기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영국 로이드선급 국제선급검사관으로 일하던 중 고 박정희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1961년 9월 귀국했다. 그는 박정희정부 초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일하면서 조선산업을 일구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에도 기여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경영자로서, 신 회장은 설계자로서 K-조선을 일궜다는 평을 받는다.

신 회장은 귀국 당시 정부 조직에서 해무청이 해체돼 조선은 상공부, 해운은 교통부, 항만은 건설부로 흩어진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조선소를 건설하고 해사산업을 일구기 위해 수산까지 포함한 해사관련 행정을 일원화한 조직이 필요하다고 대통령에게 건의해 대통령직속 해사위원회를 만들고, 위원장으로 조선소 건설 등을 지휘했다.

해사산업(maritime industry)은 해운 수산 등 해상에서의 산업뿐만 아니라 이와 연관된 육상과 연안의 조선 항만 물류 등을 포괄한다. 미국은 중국에 뒤쳐진 해양지배력을 회복하기 위해 조선 항만 해운 등 해사산업 전반에 걸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의회에서는 앙숙인 공화당과 민주당이 공동 발의한 선박법(Ships for America Act)을 논의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국가해양전략을 위한 의회지침’을 민주당과 함께 주도한 마이크 왈츠(현 유엔 미국대사)와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의원을 각각 초대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에 임명해 미국의 새로운 세계전략을 맡겼다. 지정학적 판도가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해양전략이 세계전략의 핵심 축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모습이다.

신 회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조선산업 협력을 요청하면서 백악관에 조선국(Office of Shipbuilding)을 설치했는데 우리 대통령실에도 이곳과 수시로 의견을 나눌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 해양패권이 변하고 있는데 한국은 해사산업 관련 노하우를 모두 갖고 있다”며 “해사행정을 일원화하고 강력한 콘트롤타워를 두는 것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등 부처 차원의 일이 아니라 대통령의 국가 통치권 차원에서 국가 100년 대계를 내다보는 비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도 모디총리가 한국 조선산업 배우려 연락해 = 신 회장은 1960~70년대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는 지금도 중견기업 한국해사기술을 경영하는 현역이다. 한국해사기술은 선박 설계 감리 등에서 독보적인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2000여종의 선박을 설계하고 감리했다. 매출의 95%는 해외에서 발주한다.

신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내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나보다 15~20세 많았는데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다”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말하는 당시의 일을 증언할 사람이 나밖에 없어 내가 골동품으로서 가치가 올라갔는데, 나는 오늘 이 시점까지 현역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에서 선박을 설계하고, 조선소에서 설계한 배를 건조하면 우리가 감리하는데 조선소에는 우리 직원들이 다 나가있다”며 “그래서 내가 조선소 현황을 지금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그는 매일 국내외 해사산업 관련 정보와 뉴스를 모아 ‘선박뉴스’를 발행해 주변에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이들 중 주요 뉴스를 모아 책자로 발행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30년간 국내외 뉴스를 매일 들여다보고,현장이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냄새를 맡고’ 있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모디 인도 총리는 이런 그의 가치를 알고 꾸준히 신 회장을 찾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 3월 모디 총리가 주도하는 인도 조선산업 프로젝트에 자문 계약을 했다. 조선산업은 모디 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제조업 부흥정책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의 핵심산업 중 하나다.

신 회장은 “모디 총리는 인도에 선박 2500척이 필요하다고 했다”며 “한국이 아무 것도 없는데서 세계 최고 조선소를만들었는데 인도는 철강공장도 있고 다 있으니 자신들도 할 수있다면서 계획을 만들고, 그것을 만든 사람들을 한국에 보냈고, 나도 서울대 조선공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과 함께 이 방에서 같이 만났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과의 ‘마스가’를 넘어 인도 등 더 큰 세계 시장을 보고 비전을 세우고 팀을 만들어야 한다”며 “공짜로 무엇을 얻으려 하지 말고 위기든 어려움이든 극복하고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생을 쉬지 않고 대한민국 조선산업과 경제발전을 위해 일해 온 그는 바람이 하나 있다. 건강과 시간이 허락하는 동안 세계를 돌며 한국조선산업의 성취와 미래에 대해 강연하고 알리는 것이다.

신 회장은 “K-조선이 일군 기적의 현장에 있었던 내가 한국 해사산업이 오늘 모습으로 어떻게 발전했고,무엇이 동인이 됐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알리는 그런 투어를 하고 싶다”며 “세계가 한국을 바라볼 것이고, 그런 공감 속에서 세계 해양에 대한 한국의 영향력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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