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3시간이면 국가전산망 복구한다더니

2025-09-30 13:00:01 게재

정부의 국가전산망 복구작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고 발생 나흘이 지나도록 대부분의 서비스를 복구하지 못했다. 3년 전 카카오 먹통 사태 때 “3시간이면 복구한다”던 정부의 자신감은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됐다. 복구가 늦어질수록 국민들의 불편은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국민 생활과 밀접한 서비스는 인력, 예산에 구애받지 말고 신속하게 복구하라”고 지시했다.

사고 발생 나흘 지나도록 복구율은 13%

2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대전에 있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에서 화재가 난 것은 지난 26일이다. 당시 작업자들이 서버에 비상전력을 공급하는 배터리를 옮기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낡은 리튬이온 배터리 한 개에 불꽃이 튀면서 화재가 시작됐다.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특성상 한번 불이 붙으면 내부 온도가 순식간에 치솟는 ‘열 폭주’ 현상 때문에 진화가 어렵다. 결국 불을 완전히 끄기까지는 무려 22시간이 걸렸다. 이번 화재로 국민 서비스 436개, 공무원 내부망 211개 등 총 647개 시스템이 전부 멈춰 섰다.

하지만 30일 오전 8시 기준 전산 서비스 복구율은 13%에 불과하다. 운영이 중단된 전체 647개 가운데 85개만 복구됐다. 더 심각한 건 정부가 이번 화재로 직접 피해를 본 96개 서비스의 복구 시점을 명확히 밝히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96개 서비스 기능을 모두 대구센터로 이관해 복구를 시도할 계획이다. 윤호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은 이날 오전 중대본 회의에서 “전소된 전산실의 96개 시스템은 바로 재가동이 쉽지 않다”며 “대구센터로 이전·복구를 추진해 최대한 신속하게 대체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2022년 SK C&C 판교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 서비스가 멈춘 사건과 판박이다. 3년 전 카카오 먹통 사건은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 원인이었다. 이번 사고도 마찬가지다.‘카카오 대란’의 정부발 속편인 셈이다. 정부는 3년 전 카카오 먹통 사태가 발생하자 카카오 쪽에 핵심 서버의 분산 운영과 화재방지 장치 등 ‘부대시설의 이중화’를 강력히 요구했다.

하지만 정작 국가전산망에는 이런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충남 공주에 백업센터를 짓고도 ‘셧다운’을 막을 운영 시스템 백업 기능은 구축하지도 않았다. 이제 와서 정부는 ‘예산 부족’을 이중화 장치를 못한 이유라고 핑계를 대고 있다. 더욱이 정부행정망 마비사태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전 불감증’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2023년 11월 정부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 당시에도 전산관리에 문제점을 노출하며 큰 비판을 받았다.

추석 명절을 앞둔 국민들이 입을 피해가 가장 큰 걱정이다. 정부24·국민비서·인터넷우체국 등 일부는 복원됐지만, 데이터가 손실된 시스템은 복구가 언제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 민원을 처리하려는 국민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전망이다.

벌써부터 일부 지자체 민원실에는 각종 민원서류를 발급받으려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부동산종합공부시스템이 멈추면서 부동산 거래나 임대차계약신고 절차 등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복지부가 운영 중인 화장장 예약시스템이 마비되면서 전국 화장장에는 전화가 폭주했다. 각종 심사에 필요한 서류 발급이 어려워진 탓에 대출 업무를 하는 은행 창구도 문의 전화가 잇따른다.

배터리 화재 하나로 국가전산망이 모두 멈춰 선 것은 다시는 일어나선 안될 일이다. 특히 2023년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 이후 1년 10개월 만에 국가전산망이 다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점이 정부로서는 뼈 아픈 대목이다.

국가전산망 안전관리 체계 근본적 혁신을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가전산망 안전관리 체계에 대한 근본적 혁신을 단행하기 바란다. 복구가 완료된 이후에는 이중화가 안된 경위 등 사고원인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 정치권의 ‘네 탓’ 공방도 멈춰야 한다. 통합정부전산센터 구축은 참여정부 때부터 전자정부의 일환으로 추진됐고, 이명박·박근혜·문재인정부를 거쳐온 사업이다. 이제 와서 특정 정부에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가안보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홍범택 자치행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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