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없이 집 들어온 경찰에 쇠파이프 “무죄”

2025-09-30 13:00:04 게재

1심 징역 10개월, 2심 무죄 … 판단 엇갈려

대법, 상고기각 … “적법한 직무집행 아냐”

성폭행 신고를 받고 출동, 영장 없이 집안으로 들어온 경찰관을 쇠파이프로 위협한 남성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했다. 경찰의 주거 진입이 적법한 직무집행이 아니었다는 이유에서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최근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2023년 8월 20일 오후 5시경 A씨의 여자친구 B씨가 “남자친구한테 강제로 성폭행을 당했다”며 112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4명이 현장에 출동해 아파트 복도에 나와 있던 B씨의 진술을 들었다.

경찰은 집 안에 있던 A씨를 수차례 호명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약 8분 후 현관문 걸쇠가 풀리자 경찰관은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라고 외치며 A씨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방에서 나온 A씨는 “나가”라고 말하며 베란다로 향했다. 곧이어 길이 83cm의 쇠파이프를 들고 나와 경찰관에게 휘두를 듯이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 경찰관은 위협을 느껴 집 밖으로 나왔다.

A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와 함께 강간 혐의로도 기소됐다.

쟁점은 경찰에 대항해 위협을 가한 A씨 행위가 공무집행을 방해한 것인지, 경찰의 행위는 직무집행법이 정한 법률상 요건과 방식을 갖춘 정당한 공무집행인지 여부였다.

1· 2심은 성폭행 혐의는 모두 무죄로 봤지만,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에는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주거지에 있던 A씨를 여러 차례 호명했지만 인기척이 없자 자해, 자살 등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해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시 보호조치를 위해 들어간 적법한 직무집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쇠파이프로 때릴 듯 위협한 행위는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한 것”이라며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1심 판결을 깨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B씨는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는 진술만 했을 뿐 피고인이 자해, 자살을 시도했다는 등의 진술은 하지 않았다”며 A씨가 경찰 출동을 알고 있었고 인기척이 없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직무집행법 요건을 충족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직무집행법에는 경찰은 정신착란이나 술에 취해 생명·신체·재산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 보호자가 없으며 응급구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람 등에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또 범죄가 목전에 행해지려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 예방하기 위해 경고하고, 그 행위로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긴급한 경우 제지할 수 있다. 위해가 임박한 때 방지하거나 피해자를 구조하기 위해 필요한 한도에서 건물 등에 출입할 수 있다.

법원은 이런 요건에 해당하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2심은 “경찰이 도착했을 당시 B씨에 대한 범죄 행위는 이미 종료된 상태였고, B씨는 주거지에서 나와 분리된 상태였기 때문에 추가적인 범죄가 예상되는 것도 아니었으며, 달리 범죄가 목전에 행해지려 하고 있다고 볼 사정을 발견할 수 없다”며 요건을 충족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검사가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논리와 경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특수공무집행방해죄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단순히 응답이 없다는 사정만으로는 생명·신체에 위해가 임박한 상황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생명·신체 위해 상황이 아님에도 보호조치가 아닌 수사 목적으로 주거에 진입하는 것은 적법한 직무집행이 아니다. 공무집행방해죄는 적법한 공무집행에 대해서만 성립한다. 경찰의 주거 진입이 위법하다면 이에 대한 저항은 공무집행방해죄가 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재확인됐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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