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행정망 마비 반복, 혁신으로 답하라

2025-10-01 13:00:03 게재

주민등록 등·초본을 발급받으려고 주민센터를 찾았던 기억이 아득하다. 이제는 신분증조차 들고 다니지 않는다. 모바일 신분증으로 웬만한 곳에서 신분 확인이 가능하고, 정부가 지급한 소비쿠폰도 온라인으로 신청해 곧바로 휴대전화로 사용할 수 있다. 이 편리함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 덕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강국의 효능감’은 지난달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한 번으로 산산이 무너졌다.

화재로 행정망과 공공기관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647개 디지털 서비스가 멈췄다. 지금은 복구됐지만 한때 모바일신분증, 정부24, 우체국 예금·보험, 119 다매체 신고시스템 같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필수 기능까지 마비되는 상황을 겪었다. 단순한 불편이 아닌 일상이 흔들린 ‘재난사태’였다.

더 뼈아픈 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년 전인 2023년 11월에도 지자체 행정전산망 ‘새올’과 ‘정부24’가 멈춰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 전입신고, 출생·사망신고까지 전면 중단된 바 있다.

민간에서도 유사한 경험이 있다. 2022년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 다음 멜론 등 국민이 다수 이용하는 서비스가 장시간 마비됐다. 이번처럼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 원인이었다. 당시 정부는 민간 기업에 서버 분산과 화재 방지 장치 등 이중화 체계를 요구했다. 그러나 국가 전산망은 이런 안전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민간에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면서 정작 정부는 뒷북 대응에 머문 셈이다.

이번 화재는 국가 전산망과 핵심 인프라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절박한 과제인지 다시 확인시켜준다. 그런데도 사고 때마다 임시 조치만 내놓는다면 재난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같은 실수를 막으려면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 전산망을 다지역으로 분산 운영하고, 실시간 백업으로 언제든 복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정부24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서비스는 정례적인 대체 서버 전환 훈련을 의무화해야 한다. 단순한 수리·복구를 넘어 근본적 체계 재편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온 국민의 일상을 뒤흔든 사태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재난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번 화재로 직접 피해를 입은 96개 시스템 복구에 한 달이 걸린다고 한다. 최소한 이 시점 이전에 책임을 묻는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 사태가 수습된 뒤 책임 소재가 흐지부지될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디지털 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은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전산망 위에 서야 한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구호성 대책에 그치지 말고, 실질적 시스템 혁신에 나서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최소한의 답이 바로 그것이다.

김신일 자치행정팀 기자

김신일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