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혁신기업인 열전 ⑩ 김공률 시트러스(CITRUS) 대표

감귤마을 이장의 뚝심…‘혼디’의 가치로 꿈을 만들다

2025-10-01 13:00:04 게재

140여개 농가 마을공동기업 설립, 버려진 감귤 활용해 명품술 생산

100% 원액·특허효모 기반, 저온발효·오크통 숙성으로 풍미 높여

‘혼디주’ ‘신례명주’ ‘마셔블랑’ 인기 … 모범 융복합기업으로 우뚝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강력한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세계는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 한국은 지속되는 저성장에 고환율, 수출경쟁력까지 떨어지고 있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했다. 한국경제의 성장은 기업인들의 혁신정신이 일궈 온 성과다. 내일신문은 기업가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혁신기업인을 연재한다. 그들의 고민과 행보가 한국경제와 중소기업이 나아갈 방향에 좋은 지침을 담고 있어서다.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제주도 한라산의 남쪽지역이다. 연중 따뜻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기후로 감귤생산의 최적지다. 주민 대부분은 감귤농사를 한다. 고품질 감귤로 인기를 얻자 힘든 농사가 즐거웠다.

주민들은 한가지 고민에 빠졌다. 정성을 다해 키웠지만 거름으로 버려지는 감귤이 상당해서다. 맛은 좋지만 너무 크거나 작아서 팔지 못한 탓이다. 마을이장이 해결방안을 찾아 나섰다. 다양한 시도를 했다. 최종 결론은 감귤주였다. 버려지던 감귤로 술을 빚기로 한 것이다. 마을이장은 신례리마을의 140여 농가들이 마음을 모아 농업회사법인를 설립했다. 대표는 자연스레 마을이장이 맡았다.

제품개발과 경영은 쉽지 않았다. 마을이장은 기술자를 삼고초려해 모셔왔다. 대기업에서 은퇴한 주류업계 산증인이다. 고령의 장인 기술이 빛났다. 다양한 과실주와 증류주가 탄생했다. 회사는 7년간 이어지던 적자에서 벗어났다.

이곳에서 만든 ‘신례명주’와 ‘미상25’는 식품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몽드셀렉션’에서 금상과 은상을 거머쥐었다. 마을 양조장은 매년 수천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마을이장과 주민들은 한국의 ‘사케’(일본을 대표하는 전통주)를 꿈꾼다. 30여년간 감귤농사꾼으로 살고 있는 김동률 대표와 마을기업 시트러스(CITRUS)의 발자취다.

마을이장에서 140여 감귤농가의 마음을 합쳐 마을기업 시트러스를 만든 김동률 대표. 김 대표가 감귤을 수확하고 있다. 사진 시트러스 제공

◆몽드셀렉션에서 금상 수상 = “시트러스는 농축액이 아닌 100% 제주감귤 원액으로 술을 만들고 있다.” 지난달 24일 서귀포시 신계리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의 손에는 첫 제품인 ‘혼디주’가 들려있다. ‘혼디’는 ‘함께, 같이’를 뜻하는 제주말이다. 양조장 설립에 신례리 농가 140여명이 ‘함께’ 뜻을 같이 했다는 의미를 담았다. ‘혼디’의 가치를 잊지 않으려는 주민들의 마음인 셈이다.

혼디주는 12도 과실주다. 껍질을 벗긴 제주감귤을 100% 착즙해 발효한 후 저온으로 숙성했다. 1병에 감귤 3개가 통째로 들어가 상큼함이 살아 있다. 저도주(낮은 도수)로 첢은층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시트러스의 대표 제품은 발효주로 혼디주 외에 △마셔블랑 스프링이 있다. 감귤발효 원액을 증류해 만든 증류주로는 △미상 25 △신례명주가 있다.

모든 술은 감귤농축액이나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는 게 특징이다. 껍질을 벗긴 감귤을 그대로 착즙해 특허받은 발효효모를 넣고 저온발효 시킨다.마셔블랑스프링은 ‘마시다’와 불어‘Blanc (블랑, 화이트와인)’의 합성어다. 감귤과 한라봉 착즙액에 감귤꽃꿀을 넣어 저온발효와 저온숙성으로 만든 과실주다. 미상25는 감귤발효 원액을 두번 증류한 후 저온에서 숙성한 25도 증류주다. 신례명주는 감귤발효주를 두번 증류한 후 1년간 참나무통에 숙성시켜 완성한 프리미엄 증류주다. 미상25보다 도수가 두배 높다.

신례명주 휴(休)는 인천공항면세점 전용제품이다. 지하에서 저온으로 숙성한 오크통원액을 블렌딩 했다. 냉각여과를 하지 않아 원액에 가깝다. 신례명주보다 더깊은 풍미를 보인다.

혼디주와 신례명주 등은 2021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술품질인증’을 받았다.

시트러스 대표 제품. 왼쪽부터 혼디주 신례명주 미상52. 사진 스트러스 제공

◆조력자로 나선 대기업 장인 = 시트러스가 다양한 양조기술을 갖춘 데는 이용익 공장장이 역할이 크다. 김 대표의 간곡한 부탁으로 2015년 합류한 그는 50년간 주류업계를 지켜온 장인이다. 그는 진로 연구개발이사 출신으로 ‘참나무통맑은소주'를 탄생시켰다. '일품진로' '임페리얼' '루시올뱅' 등도 그의 손을 거쳐갔다.

이 공장장은 주류 전문지식이 없던 김 대표와 농가들에게 든든한 조력자였다. 농가의 진심과 이 공장장의 기술력이 더해지면서 시트러스 감귤주는 ‘명품’으로 진화했다.

2019년 첫 흑자는 이러한 결과물이다. 입소문에 이어 온라인판매가 허용되면서 매출이 크게 늘어났다. 현재는 월 20만병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다. 20개에 불과했던 오크통(유럽참나무 술통) 수는 현재 125개로 늘었다. 시트러스는 앞으로 10년 이상 숙성된 고급 증류주를 출시할 계획이다. 시트러스 양조장 지하에는 숙성주가 잠들어있다. 최고급 위스키 30년산이 부럽지 않은 30년산 감귤주가 머지 않아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세계술시장에서 프랑스 코냑, 일본 사케에 버금가는 한국술로 만들겠다.” 김동률 대표와 이용익 공장장의 다짐이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웃는 얼굴엔 제주 햇빛에 그을린 붉은색 미소가 가득했다.

서귀포=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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