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폐지’ 놓고 공방 가열
여야 정치쟁점화 이어 재계·시민사회 찬반
“재계의 숙원 반영” vs “대통령 면소 꼼수”
정부와 여당이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면서 여·야 정치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재계와 시민사회에서도 환영과 반발 등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30일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고, 이를 대체할 법안을 새로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확정했다.
이와 관련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 “민생 경제와 국가 경쟁력, 미래 성장을 위한 선택”이라고 강조했고,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업 경영 활동을 옥죄는 요인으로 지목된 배임죄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선의의 사업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여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에게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범죄로 형법 355조 2항에 규정돼 있다. 민주당은 과도한 경제형벌이 기업 혁신을 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단순 실수로 형사처벌을 받고, 기업의 경우 단순 경영 판단까지 형사사건으로 이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재산상 손해 발생의 위험’만 입증돼도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 때문에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발생한 경영상 손실까지 형사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반면 국민의힘은 배임죄 폐지가 이재명 대통령의 면소 판결을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전날 “(이 대통령이) 배임죄로 기소돼서 재판이 중단된 상황에서 민주당이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이재명 구하기’를 위한 꼼수”라며 “현재 대장동 사건으로 재판받는 이 대통령에 대해 면소 판결을 받게 해주려는 조치로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선의에 의해 신중히 기업의 이익을 위해 판단했다면 지금도 배임죄는 처벌하지 않는다”며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배임죄를 건드리려고 하는데 결국은 ‘이재명 구하기’ 목적밖에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배임죄가 폐지될 경우 이재명 대통령은 대장동·백현동 등의 배임 혐의 재판에서 면소 판결을 받게 된다. 형법 제1조 제1항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한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범죄가 된 당시에는 처벌 규정이 있었더라도 재판 중 법이 폐지되면 면소 판결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민의힘이 과거 취했던 태도를 되돌아봐야 한다”며 “배임죄 완화 법안을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발의한 상태인데, 이 대통령을 면소시키기 위해서라는 프레임을 짜는 것은 앞뒤가 모순적이고 적반하장”이라고 맞받았다.
재계와 시민사회 등도 배임죄 폐지와 관련 환영과 반대 입장 등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당정이 배임죄 폐지 입장을 확정짓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향후 규제 개선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반겼고, 대한상공회의소도 “기업 의사결정 과정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배임죄 폐지’는 경영계의 오랜 숙원 사업 중 하나다. 경영계는 배임죄 구성요건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경영 도중 판단을 내릴 때마다 ‘이것도 배임죄로 걸리는 것 아닌가’ 불안하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법원과 수사기관이 정상적인 경영 판단까지 자의적으로 적용해 법정으로 끌고 가곤 한다고 비판한다.
또 배임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5억~50억 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형량 수위도 해외 사례나 다른 범죄에 비해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배임죄 폐지 소식에 시민사회는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배임죄는 ‘경영 실패’가 아닌 ‘신임 위배’를 처벌한다”며 “법원은 이미 다수의 판례를 통해 ‘경영상의 판단’ 원칙을 존중하여, 경영자가 가능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을 위해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면 설령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배임죄의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참여연대는 “오히려 재벌총수들이 수천억원의 손해를 발생시키는 배임행위를 저질러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아 오죽하면 3·5법칙(징역3년·집행유예5년)이란 말까지 생겼다”며 대개 기업 경영자·지배주주를 처벌하는 배임죄의 특성 탓에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졌던 관행이 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배임죄 폐지를 둘러싼 여야 간 공방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