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구 위기, 산업의 기회로 바꿀 때

2025-10-02 13:00:02 게재

저출산·고령화는 이제 낯설지 않은 단어다. 2050년이 되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보다 1/3 줄고, 2060년에는 한국경제가 마침내 마이너스 성장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이는 단순한 인구 감소가 아니라 사회 구조 전체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정책은 여전히 “아이를 어떻게 더 낳게 할까”라는 질문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출산율 하나로 이 거대한 흐름을 돌리기는 어렵다. 이제는 “줄어드는 사회에서 어떤 기회를 발견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

산업을 살펴보자. 음식점, 소매업처럼 인구가 줄면 시장도 같이 줄어드는 업종이 있는가 하면, 돌봄·보건·사회복지 서비스처럼 고령화로 인해 수요가 커지는 분야도 있다. 결국 인구 변화는 단순한 감소가 아니라 산업과 일자리의 재편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기술의 역할이 중요해진다.에이지테크(AgeTech)는 정보통신기술(ICT) 로봇 센서 등을 활용해 고령자의 돌봄과 일상을 지원하는 산업이다.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삶의 질을 높이고, 공공서비스와도 연계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분야다.

인구변화, 산업과 일자리의 재편 이어져

대표적인 사례로는 치매 예측 서비스, 요양 보조 로봇, 스마트 안전 센서 등을 들 수 있다. 과거에는 정부나 의료기관이 전담하던 영역이 이제는 민간 기업의 서비스로 확장되고 있다. 이 분야는 AI 및 자동화와 결합하며 더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무엇보다 인력 부족 문제를 보완하고, 더 적은 인력으로 더 스마트하게 일하는 방식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기업의 새로운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

고령층은 더 이상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소비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여행 레저 금융 건강관리 등 시니어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으며, 이른바 ‘실버산업’이 의료와 복지를 넘어 문화·서비스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미국은 미국은퇴자협회(AARP)가 주도하는‘에이지텍 콜라보러티브(AgeTech Collaborative)’를 통해 스타트업, 대기업, 연구기관,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개방형 생태계를 운영한다.

영국은 ‘건강노화챌린지펀드(Healthy Ageing Challenge Fund)’를 조성해 민간 기업이 개발한 실버 기술을 정부 조달과 연결한다. 일본은 파나소닉의 ‘후지사와 스마트 타운’, 토요타의 ‘우븐 시티(Woven City)’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의료·주거·이동 서비스를 통합하는 실험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처럼 주요 선진국에서는 고령화 대응을 민과 관이 함께 설계하는 협력 모델이 확산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보건복지부 산업부 과기정통부가 따로따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혁신 동력이 분산되고, 개인정보 활용을 두고도 부처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 정부도 이미 저출산 예산을 성과 중심으로 재편하겠다고 밝힌 만큼, 지금이야말로 정책의 방향을 단순 현금 지원에서 벗어나 돌봄·헬스케어·에이지테크 같은 미래 산업 육성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업 역시 시니어 시장을 ‘틈새’가 아니라 주류 시장으로 인식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혁신해야 한다.

고령화 성장동력으로 삼는 발상 전환 필요

한국은 인구감소라는 벽에 부딪혀 있지만 그 너머에는 새로운 시장의 길이 열리고 있다. 고령화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하느냐에 달려있다. 숫자에 매달리는 출산 논의를 넘어, 고령화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 발상의 전환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유민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