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가 만든 ‘갈등 공화국’, 그 해법을 찾아라 ① 레드라인 넘어선 혐오

일상화된 테러 위협…“사생결단 대결, 정치가 부추겨”

2025-10-02 13:00:09 게재

갈등 수준 10년 전 비해 큰 폭 낮아지고

이념지형도 비슷, 극좌·극우 비중 그대로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편향’강화, 상대 배척

경제 양극화, 정치 진영화로 ‘극단적 행동’

경찰, 학교 폭파 협박 가정 대테러훈련 1일 서울 광진구 구의초등학교에서 경찰들이 폭파 협박 FAX 접수 및 폭발물 해체 등 상황을 가정한 대테러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지난 1일 국회 의원회관 2층 화장실에서 손도끼와 너클 등이 발견됐다. 흉기가 의원회관 검색대를 통과한 후 300개 의원실, 회의장과 세미나실, 정당 정책위 등이 몰려있는 입법부의 심장으로 들어온 것이다. 긴장감이 돌고 있다.

지난달 27일 100만여명이 몰린 세계불꽃축제를 앞두고는 테러 위협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지난달 22일엔 대학 축제 테러를 예고한 글이 나왔다. 중·고교 등 국내 주요 시설물에 폭발물을 설치했다고 협박한 전자우편과 팩스가 올해 8월에만 총 10건에 달했다. APEC 준비상황을 점검하면서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6일 “새로운 테러 위협 사례들이 속속 현실화하고 있다”고 했다.

테러 위협이 일상화되는 상황이다. 이는 실제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우익 찰리 커크에 대한 저격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후보시절) 피습, 이재명 대통령(후보 시절) 피습, 연이은 ‘묻지마 폭행’, 극우세력의 서부지원 침입과 반대파를 제거하려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등이 이어지면서 ‘테러’가 가까이에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 갈등구조가 악성으로 옮겨 붙고 있는 모양새다. 갈등이 혐오로 불거지더니 배척이나 ‘제거’로 악화됐다. 이념, 지역, 세대, 남녀 등 다양한 차이와 갈등이 유튜브 알고리즘과 만나 ‘집단적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경제와 정치 양극화까지 결합해 악순환은 단단한 고리를 만들었다.

2일 통계청과 한국행정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갈등구조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8월 1일~9월 30일까지 19세이상 82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케이스탯리서치 조사)를 보면 진보와 보수, 이념간 갈등 수준에 대해 75.5%가 ‘심하다’(조금 심하다+매우 심하다)고 답했다. 빈부격차에 따른 갈등(74.8%)과 노사간 갈등(65.4%), 개발과 환경보전을 놓고 벌이는 갈등(61.9%)에 대해서도 ‘심하다’는 의견이 절대적이었다.

수도권과 지방간 갈등에 대해서는 58.9%가 ‘심하다’(조금 심하다+매우 심하다)고 봤다. 고령층과 젊은 층의 세대갈등(58.3%), 내국인과 외국인 갈등(53.9%), 종교갈등(51.8%), 남녀 성별 갈등(51.7%)에 대해서도 50%이상이 ‘심하다’고 했다.

◆갈등수준 낮아졌지만 = 국민들이 체감하는 갈등수준은 높은 게 사실이지만 10년전과 비교하면 크게 완화됐다는 점이 눈에 띈다. 2014년과 비교해 10년 만에 빈부 갈등이 심하다는 답변은 85.7%에서 10.9%p 낮아졌다. 이념 갈등도 85.2%에서 9.7%p 완화됐다. 노사갈등은 79.1%에서 13.7%p 낮아졌고 지역갈등(수도권-지방)은 69.4%에서 10.8%p, 개발-환경보전은 72.1%에서 10.2%p, 세대갈등은 62.7%에서 6.4%p, 종교 갈등은 59.9%에서 8.1%p 줄었다. 성별 갈등만 47.3%에서 4.4%p 증가했다.

이념 분포가 극단화된 것도 아니었다. 한국갤럽이 2016년부터 조사한 이념성향을 보면 2016년 1월의 경우 자신이 ‘매우 보수적’이라고 답한 비중은 6%였고 ‘매우 진보적’이라는 답은 3%였다. 9년 7개월이 지난 올 8월엔 각각 7%, 6%로 소폭 늘었다. ‘강한 진보성향’이 배로 증가한 것으로 보이지만 2017년 1월에도 6%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 들어 스스로를 극우나 극좌로 보는 시각이 많아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매우 보수적’이라는 답변과 ‘약간 보수적’이라는 답변을 합한 보수층 비중은 31%에서 29%로 4%p 줄었다. ‘약간 진보적’과 ‘매우 진보적’이라는 진보층 비중은 25%에서 26%로 1%p 늘었다. ‘중도적’이라는 답변은 31%에서 33%로, 성향 유보(모름+응답 거절) 답변은 13%에서 12%로 소폭 변했다.

최근 2번의 탄핵을 거치면서 태극기와 촛불, 태극기와 응원봉으로 대표되는 이념간 갈등이 거칠게 표현되고 있지만 실제 이념간 비중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거나 강도가 더 강화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 좌편향이나 극단적 우편향 비중이 커진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추석연휴에 정치얘기를 하기 어려운 이유 = 그렇다면 왜 ‘행동하는 극단주의’쪽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이젠 생각이 다른 사람들간의 토론이 사라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치 얘기는 금지어가 됐다. 정치엔 이념이 담겨 있고 이는 집권 세력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귀결되면서 다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지역 모 대학의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86세대 친구들끼리 만나면 먼저 ‘정치 얘기 하지 말자’고 하고 시작한다. 성향이 다른 상대방의 얘기를 듣는 게 아니라 서로 인정하지 않고 반박을 하다보면 토론이 아니라 싸움이 되는 경험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나도 다른 성향의 사람들 얘기를 듣기 싫다”고 했다.

‘정치얘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명절 금지 행위’가 굳어진 지도 오래됐다. ‘추석 민심’을 잡으려는 정치권의 지지층 결집 행동들은 덕담을 나눠야 할 일가친척 모임을 싸움판으로 부추기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갈등이 혐오, 증오로 연결되더라도 상대를 ‘제거’의 대상으로 보며 행동으로 옮기는 저변엔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일반인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악화됐다. 2014년에 73.6%(조금 신뢰 67.4%+매우 신뢰 6.2%)였던 신뢰도는 2024년엔 55.6%(조금 신뢰 54.1%+1.5%)로 대폭 떨어졌다. 특히 전문관리직과 월소득이 400만~500만원인 중산층이 생각하는 신뢰도가 80.1%와 76.3%에서 50% 밑으로 추락했다. 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도 54.4%에 그쳤고 20대는 50.0%, 30대는 51.1%에 머물렀다.

◆갈등이 폭력으로 이어지기까지 = 어떻게 ‘상대편’에 대한 증오가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이장희 창원대 법학과 교수(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는 최근 토론회에서 “사생결단식 정당의 대결 문화는 그간에 무엇보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대결의 문제로 나타났고 이 대결이 극단화해 결국 민주헌정을 파괴하는 극우정치의 양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했다.

홍성국 전 국회의원(민주당 경제자문회의 의장)은 ‘행동하는 극단주의’의 원인으로 ‘수축사회’라는 새로운 노멀(Normal)을 짚어냈다. 그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시대”라며 “저출산 고령화와 AI 등의 영향으로 양극화가 확산되면서 생존을 위한 투쟁의 시대의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수축현상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고 서로간의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축소되면서 이를 해소하지 못하고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김만흠 전 입법조사처장은 “유튜브와 알고리즘으로 확증편향이 강화되고 입법독주로 정치적 양극화가 확산되면서 갈등이 행동으로 격화되고 있다”면서 “갈등유발의 가장 큰 원인은 정치권과 언론”이라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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